한국전 정전협전시 39도선이 될수도 있었던 운명의 1도선

기타|2014. 8. 21. 20:51

 

 

 

<운명의 1도>라는 책이 나왔더군. 625 때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로우니 장군의 회고록인데 로우니(Edward L. Rowney) 장군은 한국전에 참전하고 한미동맹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몇 안 되는 군인 중 한명에 해당한다고 한다. 운명의 1도란 북위 38도 과 39도 의 1도 차이를 말한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시까지 39도 선으로 될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 이다.

 

 

왜 휴전선은 39도선이 못 되었나 ?

 

 

 

 

 

휴전협정이 성립되고 38도선을 그은 돌아오지 않는 다리(the Bridge of No Return)에는 '당신은 38도선을 넘고있습니다 (You are crossing 38th parallel)이라는 팻말은 61년이 지난 오늘에도 건너가지 못하는 다리로 아픔이 되어있다.

 

 

 

 

 

 

미국 워싱턴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관(Korean War Veterans Memorial)에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대리석 조각이 씌여져 있다. 자유를 위해 흘린 피가 그만큼 많았다. 미국의 피해는 3만 6940명 전사, 9만 2134명 부상, 3737명 실종, 4439명 포로, 총계 13만 7250명이니 한국전에서 미국의 은혜는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미국의 고마움과 관계없이 한국전에서의 비하인드 스토리에는 "그 때 이랬더라면..."하는 아쉬움은 곳곳에 숨어있다. <운명의 1도>의 저자 로우니 장군은 책에서 한국전은 한국에서 벌어졌지만 한국인들은 한국전에 대하여 모르는 사실이 너무 많다며 이야기를 풀어낸다. 

 

 

 

 

로우니에 의하면 38도선이 설정된 이유는 그 당시 한국전에서 한반도의 군사분계선 설정에 침여한 군 전략기획단 책임자인 조지링컨(1907~1975)장군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란다. 조지링컨 장군은 휴전을 위하여 설립된 군사정전위원회에서 39도선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었지만 28도선을 고집한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는 가설로 인정되었던 미 예일대의 지리학과 교수인 니콜라스 스파이크만(1893~1943)의 저서 평화의 지리학(The Geography of the Peace)에 주장된 미국의 입장에서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선은 38도선이 적합하다는 논리에 혹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세계 주요 사건의 90%가 북위 38도 주변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믿었던 탓이다.

 

 

 

 

 

 

 

그 당시 링컨장군은 당시 미 육군참모총장인 조지마셜(1880~1959) 장군과 이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고 허락을 받아 북위 38도 선으로 결정하게 되었단다,

 

 

 

 

 

 

 

 

사실, 로우니장군은 1950년 6월초 전선을 시찰하고 미 국방부에 북한의 침공 가능겅에 대하여 보고하였지만 윌러비장군은 침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묵살하게 되고 그 결과 초반에 한국은 거의 적화될 위기까지 가는 결론을 낳는다. 그는 말한다, 만약 38도선이 아닌 39도선으로 결정했더라면 남한을 방어하기가 훨씬 쉬웠을 것 이고 더불어 수많은 생명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한다. 2차대전 이후 한국의 분할통치를 위하여 그었던 38도선을 625 이후에는 29도선으로 그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1953년 7월 27일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정전협정에 조인한 후 12시간후 22시 휴전협정이 발효되기 전까지 수많은 생명이 쓰러져갔던 월비산, 단장의능선, 백석산, 저격능선, 크리스마스고지, 백마고지, 불모고지, 사천강 전투에서 그 한맺힌 사연들도 없었을 것 이다. 한국전 정전협전시 39도선이 될수도 있었던 운명의 1도선은 오늘날에도 한국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