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명품브랜드 상표,스타일,특징 한 눈에 알아보자

기타|2012. 11. 24. 09:18

명품브랜드 상표,스타일,특징 한눈에 보기

 

늘 명품브랜드에 대한 공부욕구가 있었다. 명품에 대한 소유욕구보다 무엇이 명품으로 가게 했는지 궁금범 이었다. 정말 오랜 시간 수집한 자료로 명품브랜드가 되게한 상표,스타일,특징을 간기한다. 이 글을 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향루 생겨나고 있는 더 많은 명품에 대한 자료도 2차포스팅으로 올려볼까 한다. 




http://www.krisvanassche.com

프랑스브랜드



크리스반아세(1976~,프랑스,남)는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엔트워프 왕립 미술학교를 졸업하며 에디 슬리먼의 권유로 입생로랑에 입사했다. 2000년 에디슬리먼이 크리스찬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로 자리를 옮기자 역시 그 를 따라 디올 옴므로 향했다. 2004년엔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만들었다. 크리스반아세는 캘빈클라인이나 요지야마모토처럼 검은색을 즐겨 사용한다.크리스반아세스타일은 간결함이다. 사업분야는 남성패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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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브랜드



루이프랑스와까르띠에(Louis-Francois Cartier,1819-1904,프랑스,남)가 1847년 아돌프 피카드의 견습생으로써 몽토르고이(Montorgueil)가 31번지의 보석 작업장의 책임을 맡으며 까르띠에의 전통은 시작된다.루이프랑스와 까르띠에는 가문의 전통을 세우기 위하여, 그의 아들이었던 루이 프랑스와 알프레드(Louis-Francois-Alfred,1841-1925)에게 기술을 가르쳐 사업에 참여 시키고 1874년, 알프레드는 회사 경영을 인수 받는다. 그 후 1898년, 알프레드는 다시 그의 첫 번 째 아들인 루이와 동업을 시작하면서 현재의 까르띠에 브랜드는 이어져온다. 1899년 까르띠에 전 세계 왕실에 보석을 공급하기 시작한다. 까르띠에의 보석은 후에 유명한 연예인들이 많이 사용 하였다.보석중 트리니티링은 루이(Louis)가 1924년 친구이자 시인인 장 콕토(Jean Cocteau)를 위해 만든 반지로, 화이트골드·옐로골드·핑크골드 등 세 가지 색상의 링이 서로 얽힌 형태를 이룬다. 이는 사랑과 우정·충성 을 상징하는데, 이후 보석의 명품이 되었다. 까르띠에스타일은 달콤함을 내재한 고급스러움이다. 사업분야는 보석외에도 시계,가죽제품,액세서리,향수등이다. 까르띠에는 옷 잘 입기로 소문났던 영국의 윈저공 부부, 프랑스의 화가, 극작가, 영화감독이자 시인이었던 장 꼭또 외에도 모나코의 그레이스 공주, 루마니아의 마리 여왕 등 왕실의 사람들이 많이 애용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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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브랜드



끌로에는 Gaby Aghion(1921~,프랑스,여)에 의하여 친구이름을 따서 브랜드를 짓고 1952년 고급 기성복으로 출발하였다, 수많은 디자이너 손을 거치면서 오늘날 전세계 여성들에게 선망받는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특히 리치몬드 그룹에 마틴싯봉과 칼라거펠트에 이어 스텔라맥카트니 가 수석디자이너로 컬렉션을 이끌면서 오늘날의 명성을 이어 가고 있다. 스타일은 따뜻하고 여성적인 이미지를 풍긴다. 젊고 도시적인 느낌을 주면서 다소 대 담한 컨셉을 사용한다. 사업영역은 의류외에도 액세서리,가방,슈즈등이다. 특히 여름옷은 명성이 높다. 클로에는 따뜻한 여성상을 나타내는 이미지 때문인지 케이트 모스, 키이라 나이틀리,알렉스 커렌.린제이 로한,미샤 바 튼,니키 힐튼,케이트 모스,키얼스틴 던스트등 유명 연예인 들이 많이 애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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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브랜드



프랑스의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Dior, Christian, 1905~1957,프랑스.남)은 1947년 자신의 양장점을 시작으로 현재의 디올 브랜드를 설립하였다.건축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에콜 리브르 데시앙스 폴리테크에서 수 학하고 외교관을 지망했다. 1930년 공황(恐慌) 때 집안이 파산하여 한때 화랑을 열기도 했다. 1935년부터 생활의 방편으로 드레스와 모자의 크로키를 그리기 시작하여, 1938년 R.피게의 양장점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여 한때 디자인을 멀리했으나, 다시 피게의 양장점에 돌아와 뤼시앙 P.를롱 등을 전전하였다. 1947년 독립, 파리의 몽테뉴가(街)에 자신의 양장점을 열었으며, 긴 플레어 스커트를 채용, ‘뉴룩’라는 이 름으로 발표한 제1회 컬렉션에서 제1급 디자이너로 인정받고, 그의 롱스커트가 인기를 끌었다. 이후 튤립라인·H라인·A라인·Y라인·애로 라인 등을 발표하여 세계의 패션을 이끌었다. 디올스타일은 곡선미 강조와 관능적 실루엣에 있다. 가방이 유명하며 주름잡힌 Karenina 백이나 광주리 모양의 Le Plisse백은 특히 유명하다. 사업분야는의류외에도 핸드백,슈즈,액세서리,시계,보석,향수 등이다.디올은 관능적인 영화배우 샤론 스톤이 즐겨 애용하는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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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1821~1892,프랑스,여)은 1835년 파리에서 유명한 트렁크 및 케이스 제작자인 마레샬(Marechal)의 견습공으로 일하며 귀족들의 트렁크 꾸리는 일을 도왔다. 그러던 중 직사각형 모양의 뚜껑이 평평한 가방을 개발하 여 크게 성공하였다. 당시 가방은 둥근 모양으로 옷을 담기에도 불편하고 쌓을 수도 없었다. 수십 개의 가방을 가지고 여행을 다니던 귀족들에게 루이 뷔통이 개발한 가방은 큰 인기를 얻었다.그의아들 조르주 뷔통 (1857~1936)이 사업을 물려받은 후 루비통의 모노그램을 완성하였다. 루비통은 2009년 현재 5대째 패트릭 루이비통이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유명 디자이너 마크제이콥스는 루이비통의 수석 디자이너이다. 루비통을 나타 내는 연예인은 숀코네리이다. 루비통스타일은 갈색계열의 차분한 품격이다. 사업분야는 가방외에도 패션,가죽제품,액세서리,시계,보석등이다. 특히 루이비통 가방과 지갑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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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브랜드



랑방의 역사는 곧 패션 브랜드의 역사이기도 하다.1920년대와 30년대 대표적인 디자이너로서 트리밍과 자수, 투명하고 가벼운 꽃무늬 색깔의 구슬의 숙련된 사용은 랑방의 트레이드 마크다. 1946년 잔느 랑방이 죽고 소유주 는 마리 블랑셰로 바뀌어 1958년까지 운영된다.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사촌 이브스 랑방에게 넘어가고 그 이후 회사는 여기 저기서 부침을 거듭한다. 2001년에 투자 회사 Harmonie. S.A가 경영권을 사들이고 그해 8월 알버 앨바즈를 아티스틱 디렉터로 영입된다.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은 브랜드들이 그렇듯 랑방은 한마디로 말해 우아하다. 과도하지 않은 개성을 유지하면서도 흔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예전에 비해 더 복고적이면서도 전반적 으로 군더더기를 줄이고 스탠스의 우아함을 철저하게 고수해 나가고 있다 랑방 스타일은 컬러가 매우 절제되어 있고 고풍스런 맛을 연출한다. 사업분야는 패션과 향수계열이다. 특히, 향수는 샤넬과 함께 2대 산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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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브랜드



샤넬은가브리엘 보네르 샤넬(1883~1971,프랑스,여)이 설립한 의류 브랜드이다. 프랑스 소뮈르 태생이고 별칭은 코코 Coco이다.샤넬은 1910년 파리에여성 모자점을 열고 모자 디자이너로 활동하였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여 성복 디자이너로 전향하였다. 간단하고 입기 편한 옷을 모토로 하는 디자인

활동을 시작하여 코르셋 등 답답한 속옷이나 장식성이 많은 옷으로부터 여성을 해방하는 실마리를 만들었으며, 여성복에 저지라는 소재를 처 음으로 사용하였다. 오늘날 샤넬 슈트라고 불리는 카디건 스타일의 슈트를 발표하여 유명하게 되었다.약 15년간 가게를 닫았으나 1954년 다시 문을 열었다. 장식이 생략된 옷의 본체에 브레드나 코드의 테두리를 붙이고, 당 시에는 보기 드문 크고 작은 색유리나 크리스털 글라스의 액세서리를 붙이기도 하였다.샤넬스타일은 간편.활동적.여성적.귀족적이다. 또한, 새로운 컨셉이 자주 등장하다. 유행의 변천속에서도 별로 변함이 없이 오늘날에도 애용된다. 향수 ‘샤넬 No.5’ 도 유명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모델의 모자’라는 암호명으로 나치스첩보원으로 활동하였음이 사후 20년이 지난 1995년에 확인되어 충격을 주었다.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향수,화장 품,시계,보석등을 취급한다.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가 애용하는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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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브랜드



셀린느(1894~1961,프랑스,여)는1946년 아동용 구두를 편하고 세련되게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로 패션계를 출발하였다.. 후에 1959년 여성 구두 디자인의 도전으로 현재의 셀린느 라는 브랜드가 이어졌다.셀린느의 수석디자이 너는 마이클 코어스이며 현재 셀린느 메이커는 루이비통의 회사에 영입되었다. 셀린느스타일은 색을 단조롭게 쓰면서도 살짝 도발적이고 우아하다. 사업분야는 구두, 의류,액세서리,패션 등이다. 셀린느를 애용했던 연예인은 케서린헵번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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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아리키엘(1930~,프랑스,여)은 1962년 그녀의 남편이 운영하는 숍 ‘LAURA’에서 직접 디자인한 스웨터와 임부복을 선보이며 패션과 인연을 맺은후 현재 자신의 회사인 ‘SONIA RYKIEL CDM S.A’의 오너이자 CEO로 여전 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크게 부풀린 빨간 머리와 짙은 눈 화장, 매부리코에 블랙 코디네이션을 즐기는 그녀의 외양은 자신이 창조해 내는 옷 만큼이나 독창적이고 유니크하다. ‘니트의 여왕’이라는 불리는 그녀의 디자인은 베이직하고 편안한 아이템이었던 니트를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한 핫 아이템으로 승화시켜 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소니아리키엘스타일은 현란한 색채와 무늬를 활용하여 소녀적인 이미지와 섹슈얼한 이미지를 동시 에 나타낸다. 사업분야는 패션,가방,구두,액세서리,향수등이다. 오드리 헵번과 카트린느 드뇌브등이 애용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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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브랜드



1974년 파리에서 탄생한 아가타(AGATHA)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유일의 패션 악세사리 전문 브랜드이다,아가타의 회장이자 디자이너인 창업주 Michelle Quinioux씨는 세계적인 유명세나 판매 실적에도 불구하고자신이 기업가 로 불려지기 보다는 예술가로 평가되길 원하며, 실제 그의 비지니스 방식도 지극히 예술가적인 감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아가타 매장 자체를 단순히 악세사리를 판매하는 장소로 국한하기 보다는 프랑스 문화와 예술의 교 류가 있고 현대의 감각 속에서 과거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장소로 승화시키려 하는 것이 그의 뜻이기다 하다. 아가타 대표 디자인은강아지 Scottish terrier 종의 강아지이다.스코틀랜드가 원산지인데, 다리까지 길게 내려 오는 부드럽고, 빛나는 털은 온순한 성격과 어울어져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하니 아가타스타일은 귀여움과 사랑이라고 표현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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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의 창시자 티에리 에르메스(D.Tierry Hermes,1801~1878,이태리,남)의 가족은 신교도로 종교적인 이유로 프랑스 파리로 망명한다.1837년 파리의 마드레인 광장의 바스 듀 름파르 Rue Basse-du-Rempart로에서 마구상 을 시작한 것이 에르메스 브랜드의 출발이었다. 당시 티에르는 당시 교통수단인 마차를 끄는 말에 필요한 용구, 안장, 장식품 등을 직접 수공으로 제작, 1867년 세계 박람회에서 1등 메달을 받음으로 인해 에르메스 마구제 품의 섬세함과 튼튼함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1878년 창업자 티에리 에르메스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 샤를 에밀 에르메스가 선친의 일을 계승, 새로운 사업들을 창출해내며 기존의 가죽제품 위주의 생산에서 부티크 사업으로 확장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에르메스의 사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게 되고, 각국의 정,재계 유명인사 및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사람들이 에르메스의 주고객이 되었다. 그레이스 켈리, 윈저공작 부부,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잉그리드 버그만, 재키 케네디와 같은 사람들이 에르메스의 단골 고객이 된 것 이다. 에르메스스타일은 오렌지색을 기본으로 하는 보헤미안적 스타일이다. 사업분야는 가죽제품외에도 실크,패션 ,액세서리,보석,시계,향수 등이다. 그레이스켈리가 들고 다녔던 켈리백이나 린지로한,빅토리아베컴,황신혜등이 애용했던 버킨백은 명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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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브랜드



에마누엘웅가로(1933~,프랑스,남)는 ‘미래감각파’, 또는 ‘젊은 혁명가’라는 평을 받으며 재단이나 색채에 신선한 영향을 끼치고 메탈릭 소재나 새로운 컬러를 시도해 패션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특히 전원의 풍경 을 연상시키는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프린트를 조합해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1996년 웅가로는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와 손을 잡고 향수 라인을 개발했으며 그 후 2005년 에마누엘 웅가로 브랜드는 아심 압둘라가 이끄는 글로벌 캐피털 투자은행이 인수해 현재 에스테반 코르타자(Esteban Cortazar)가 헤드 디자이너로 웅가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웅가로스타일은 현란한 색채 및 우아하고 뇌쇄적인 매력으로 인상파 화가의 작품을 연상케한다. 사업분야는 패션,의류,향수등이다. 영화배우 니콜키드먼,안젤리나졸리 등이 애용하는 브랜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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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 하나로 명품의 반열에 오른 듀퐁은 설립자 시몽 티소 뒤퐁(Simon Tissot Dupont,1847~사망,프랑스,남)은 1872년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외교관, 비지니스맨, 법률가, 등을 위한 서류가방을 만들어 주는 25세의 가방 제조업자였다. 그가 만든 가방이 상류층 사이에 인기를 누리면서 1884년 뒤퐁은 프랑스 최대 백화점이었던 '르 루브르'의 공식 공급업체로 지정되었다. 듀퐁이 본격적인 성장가도를 달린 것은 시몽의 주 아들인 뤼시앵과 앙 드레가 경영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들은 금세공사, 금속공예가, 가죽 전문가, 에나멜 전문가 등 세계 각지에 있는 장인들을 영입하였다. 그리고 고급가방, 화장품 케이스 등을 만들어 런던, 뉴욕 등지의 명품 매장에서 판 매하기 시작했다. 1948년엔 에딘버러 공과 결혼하는 영국 엘리자베스 공주의 여행용 가방을 제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듀퐁이 지금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인해 듀퐁은 가 죽 원자재 부족와 고객 감소라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 때 듀퐁은 주력 업종을 가방에서 라이터로 바꾸는 모험을 시작한다. 라이터는 원재료가 적게 들고 손질이 많은 제품으로 불황을 극복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 렇게 탄생한 것이 듀퐁 라이터만의 '퐁'소리. 70년대 들어 듀퐁은 라이터에서 쌓은 노하우인 옻칠 기법, 금은 세공기술 등을 필기구에 적용했다. 라이터가 세계적 명성의 밑거름이 됐다면 필기구는 명성을 확고히 다지는 계 기가 되었다. 듀퐁스타일은 심플하고 모던하면서 우아하다. 단순한 실용 상품이 아닌 예술성을 내포한 최고의 상품을 만드는 곳이 바로 에스티 듀퐁이다. 오늘날 듀퐁은 단순히 라이터와 필기구 뿐 아니라 우아한 가죽 제품 , 시계, 키홀더, 커프스 링크, 선글라스, 남성의류,휴대폰줄,열쇠고리 등을 생산하며 토털 명품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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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브랜드



입생로랑 (Yves Saint Laurent, 1936~2008,프랑스,남)은 알제리의 오랑에서 태어났으며 유년시절부터 천재적 데생실력 발휘했다. 디올의 수석디자이너 였으며 1962년에는 경제적 후원자이자, 평생의 연인인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자신의 브랜드인 YSL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그의 패션 철학이 펼쳐진다 1970년대 중반부터 영화 의상에도 관심을 가지고 카트린느 드뇌브의 의상을 제작하여 화제를 모얐다. 후에 이태리 구찌에서 브랜드를 인수했다. 입생로랑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우아함이다.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향수등이다..린제이와그너. 하이디쿨름. 데미무어등이 입센로랑을 애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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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1952~,프랑스,남)는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17세 때 피에르 카르댕에게 의상 스케치를 인정받아 1970년부터 1년 동안 어시스턴트로 근무하면서 패션계에 입문하 였다. 자크 에스테르 사, 장 파투 사를 거쳐 1976년 자신의 이름으로 첫 컬렉션을 발표하였다. 일본 가야시마의 콘테스트에 당선되어 1978년 스타일리스트로서 가야시마 프랑스와 계약하고 1986년 초 파리 뷔뷔엔느 거리에 부티크를 열었다. 그의 디자인은 위트가 있어서, 상식적이고 전통적인 구성에서 벗어나 그로테스크한 스타일을 추구하는데 이처럼 전통 스타일에 바탕을 두고 거침없이 새로운 형태를 선보이는 것이 그의 창작 스타일이다. 미래를 앞당겨 선보인다는 일관된 주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여성들이 의상을 선택하고 입는 행위 자체가 즐거움이 되어야 하며, 의상은 인간에 의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객체이므로 디자이너의 역할은 의상에 의 미를 부여하는 것일 뿐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의상에 대한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은 의상의 자유를 박탈하게 되므로, 디자이너가 먼저 자유스러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프랑스 패션계의 가장 전위적인 디자이너로 불린다 . 고티에스타일은 영국의 펑크룩에 프랑스의 고상함을 가미시킨 디자이너라는 평을 받는데.젊고 전위적이며 섹시한 이미지로, 클래식과 현대적인 감각을 혼합한 구성을 보인다.현재 장 폴 고티에, 제이피지(JPG), 고티에 진 즈(Gaultier Jean's) 등 세 개의 라인을 통하여 의상을 발표하고 있다.에르메스의 수석 디자이너이기도 하다.제시카심슨과 비욘세가 애용하는 브랜드이다.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향수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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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브랜드



프랑스의 귀족 출신 위베르 드 지방시(Hubert de Givenchy,1927~,프랑스,남)는 법학을 공부하다 1952년 파리의 조르주 5세 거리에 그의 패션 하우스를 개업하고 1956년 기성복인 프레 타 포르테를 시중에 내놓은 오뜨쿠튀르 업계 최초의 디자이너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지방쉬 위니베르시테’였다. 1957년에는 지방시 향수 회사를 창설했고, 최초의 여성용 향수 '드(De)’와 지방시 작품을 위한 최고의 사절 오드리 햅번을 위한 '렝떼르디 (L`interdit)’를 출시하였다. 1958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여자들의 무릎이 드러나는 치마 길이의 디자인을 발표하여 주목을 받았다. 유명한 햅번룩의 창조자이기도 하다.1995년 지방시가 은퇴하자 그 해에 영국 디자이너상 을 3번이나 탔던 신예 디자이너 존갈리아노가 지방시 오뜨 쿠튀르 라인의 디자이너로 지명되었다가 크리스챤 디올의 수석디자이너로 자리를 옮긴 후 1996년 알렉산더 맥퀸이 지방시의 오뜨꾸튀르라인과 기성복라인을 총괄하 게 되었다.지방시스타일은 우아.순수.고급스러움의 만남이다. 사업분야는 패션,의류, 선글라스, 스킨케어, 향수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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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브랜드



구찌오 구찌(Guccio Gucci)에 의해 1921년 설립되었다.1947년에는 오늘날까지 구찌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잡은 대나무 핸드백(bamboo handle handbag)을 출시했다. 1950년대 는 안장 끈에서 영감을 얻은상표 그린-레드-그린 웹이 커다란 성공을 거두어 브랜드를 대표하는 가장 친숙한 마크가 되었다.더블 G마크가 붙은 독특한 무늬와 빨간색과 그린색의 조화로 캔버스천가방은 상류사회의 승마의 복장에 인기와 더불어 Gucci를 세계에 알렸다. 런 던, 파리, 뉴욕에 첫 번째 부티크를 오픈하면서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였다. 1913년,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피렌체에 고급피혁 제품점을 오픈하면서 더블 G 마크가 붙은 캔버스와 빨간색과 그린색 조화의 워브라 인등을 발표하면서 196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된다.구찌스타일은 집요한 장인 정신, 트렌디를 선도하는 디자인, 뛰어난 품질이다, 이 세가지는 명품이 지녀야할 필수 요소인 동시에'GUCCI'의 신화를 일으킨 원동력이기도 하다.2000년 이후에는 수많은 브랜드를 흡수, 입생로랑(Yvessaint Laurent)등을 거느리게 됐다. 구찌스타일은 사업영역은 가방을 비롯해 신발, 의류, 시계와 안경 등의 각종 소품과 보석, 향수, 홈 컬렉션에 이른다.












http://www.dolcegabbana.com

이태리브랜드



시칠리아 태생인 도메니코 돌체 (1958년 생)과 이태리 베네치아 출신 스테파노 가바나 (1962년 생)는파리밀라노의 아틀리에에서 보조로 일하며 만났으며 바로크를 서로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들은 1985년 밀라노 컬렉션의 창 시자가 "뉴 탤런트(New Talents)"를 선보이기 위한 패션쇼에 그들을 초청했을때 돌체 & 가바나라는 이름을 처음 만들어냈다. 그 다음 해, 여성복 솔로 패션쇼를 처음 열었으며, 그 후에는 남성복과 향수를 선보였다. 1999년에는 이탈리아, 일본, 홍콩에 이어 런던에 숍을 개장했다.세컨브랜드로는 D&G 등이 있다. 둘다 게이라고 밝혀 화제가 되었다. 사업영역은 패션,액세서리.향수,선글래스이다. 이들 영감의 원천은 이탈리아 여성, 그중에서도 남부 이탈리아의 정열을 가진 매력적인 시칠리아 여성들이다. 늘상 새로운 모티브를 통해서 로맨틱한 여성미를 보여주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섹시하면서도 본질적인 우아함을 간직한 여성, 바로 이탈리아 여성이라고 말한다. 돌체앤 가바나의 스타일은 한마디로 관능적인 여성을 위한 란제리 룩이다. 스칼렛요한슨이 화장품 모델이 된 적이 있고 애용자로 영화인 소피아로렌,제시카,장쯔이 등이 있다.










http://www.diesel.com

이태리브랜드



1975년, 패션학교 Industrial Textile Manufacturing School을 갓 졸업한 청년, 렌조 로소(Renzo Rosso,1955~,이태리,남)에 의해 디젤은 창립되었다. 그는 1978년 이태리 북동부 시골도시인 몰베나(Molvena)에 본부를 두고 그 지방의 의류상인들과 연합하여 지니어스그룹(Genius Group)을 설립하고, 이 회사를 근간으로 해서 리플레이(Replay)와 디젤(DIESEL)을 성공적으로 런칭했다. 하지만 렌조로소는 좀 더 큰 야망으로동료들과 헤어져 1985년 디젤(DIESEL)을 독자적으로 경영하는 데 성공하기에 이르렀다.그는 락커같은 복장으로 다니며 지금도 스노보드 매니아이며, 요가로 심신을 단련하고, 트렌드에 앞서가기 위해 매달 150여 권의 잡지를 섭렵한다고 한다. 또한 회사의 규모가 커지자 본사를 패션의 메카인 밀라노로 옮기는 대신 몰베나 공장을 개조해 본사로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세계적인 패션회사의 CEO라고 하기에는 다소 엉뚱하기까지 한데, 그런 기행의 행보는 광고전략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내로라하는 경쟁 브랜드들이 수십 억 달러를 마케팅 비용으로 쓰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약 4,000만 달러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디젤(DIESEL)의 인지도는 이미 프라다·알마니·베네통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DIESEL의 컬렉션은 젊고 스타일리쉬한 매니아층으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DIESEL스타일은 기존의 유행과 트랜드를 모방하기 보다는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디자인을 계속해서 선보임을 통해 새로운 패션 및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고 있다. DIESEL 향수의 캐주얼 하면서 스포티한 디자인 그리고 강렬하면서도 모던한 향은 DIESEL 매니아라면 빠뜨릴 수 없는 매력포인트이다. 디젤은 데님이 주종 상품이나 패 션상품쪽으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http://www.loropi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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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초 모직물로 사업을 시작한 로로 피아나 가문은 기술과 제품혁신의 신념을 가진 피에트로 로로 피아나의 노력으로 1924년 4월 24일 현재의 회사가 탄생되었다.남성과 여성을 위한 최고의 스포츠웨어와 니트, 액세서리 및 홈을 추구하고 있고 제품들은 모두 최상의 캐시미어, 최고급 비쿠나, 고급 모를 사용하여 독자적인 스톰 시스템(Storm System)으로 방수 및 방풍처리가 된 고급스러운 섬유를 사용한다. 콜렉션은 유행이나 트렌드에 쉽게 따르지 않고 지속적인 우아함을 추구하는 도시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한다. 로로피아나스타일은 원색과 단색의 대비를 통한 상큼한 아름다움이다. 로로피아나 웨딩드레스는 유명하다. 사업분야는 패션이다. 이명박대통령 등 유명인사들이 애용하는 브랜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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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 이탈리아의 매력적인 도시 피렌체에서 태어난 로베르토 까발리(1940~,이태리,남)는 태어났다.이탈리아의 인상주의 화가 주세페 로시(Giuseppe Rossi)를 할아버지로 둔 까발리는 어린 시절부터 예술을 가깝게 접하며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기초를 다져나갔다. 예술학교를 자주 드나들며 감성을 키웠으며 17세에 플로렌스의 예술 아카데미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그 후 까발리는 프린트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그의 첫번째 창작품인 니트 위 의 꽃무늬 모티브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며 이탈리아의 주요 양말류 업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까발리의 실험은 이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가죽 위에 프린트하는 나염 공정을 발명하면서 더욱 성공 가도 를 달리게 된다. 까발리는 자신의 모국인 이탈리아와 닮은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한 의상을 선보이며 패션 디자이너로서 성공적인 행보를 거듭한다. 로베르토까발리스타일은 애니멀 프린트와 대담하면서도 여성적인 커팅, 풍부한 깃털 장식과 라인스톤, 가죽크리스털, 프린지 등 다양한 디테일이다. 사업분야는 패션,신발과 아이웨어, 시계, 향수, 인테리어,까페 사업등이다.










http://www.marn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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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 (Consuelo Castiglioni,1954,이태리,여) 가 디자인한, 폭넓은 스타일의 여성 의류 및 액서서리 라인 마르니(MARNI)는 1994년 세계 패션의 전면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1999년에는 기존의 유 명 제작자인 Ciwi Furs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독립적 조직이 되었다. 마르니의 디자이너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 (Consuelo Castiglioni) 가 추구하는 럭셔리는 바로 순수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실크, 케시미어, 모피, 기타 소재를 사용하여, 독창적인 꾸띄르 즉 라인, 실루엣 등에 대한 순순한 접근방법 사이를 넘나드는 아방가르드적인 물결을 창조하고 있다. 또한 매우 질서 정연한 방식으로 여러가지 직물을 병치 시킴으로써 새로운 형태와 기능을 창조해낸다.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 (Consuelo Castiglioni)는 마치 미술가와 같이 조심스럽게 그 색에 어울리는 정확한 농도를 찾아가며 작업한다. 직물의 진정한 풍부함을 그래도 보여주 기 때문에 단색은 그녀의 기본 팔레트가 된다. 뛰어난 재단 능력과 직물의 이해를 통한 독창적인 표현 방법, 편안한 착용감, 섬세한 엘레강스는 각각의 의상을 통해 시대를 표현하는 콘수엘로 카스틸리오니 (Consuelo Castiglioni) 의 접근 방법, 바로 그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액세서리 라인은 완벽한 백 컬렉션과 변화에 재빠르게 대응하는 구두 라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마르니의 트레이드 마크인 직물과 버터처럼 부드러운 가죽을 이용하여 제작된다.신선한 컬러, 실크, 린넨닌한 면같은 편안한 소재를 주로 사용하면서 전원의 편안한 노래가 들릴 듯한 서정적이고 섬세하다. 마르니스타일은 적극적이면서도 세련된 동시에 차분한 여성을 위한, 절제되면서도 여성스러운 복식 형태로 세련된 컬러 배합과 특유의 루즈한 실루엣의 디자인으로 믹스 앤 매치가 가능한 웨어러블 아이템이다. 사업분야는 가방, 구두, 신발, 액세서리, 선글라스등이다.










http://www.maxmar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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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마라(MaxMara)는 아킬레 마라모띠(1927~2005,이태리,여) 가 1951년 막스마라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탄생됐다. 막스마라(Max Mara) 브랜드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첫 번째는 그의 가문 이름에서 " 마라(Mara)"를, 가문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막스(Max)”가 합성된 것이고, 두 번째는 백작 막스(Max)와의 우정을 기리리 위해 검소하면서 패션감각이 뛰어났던 막스(Max) 백작의 이름과 성인 “마라(Mara)”를 따랐다는 것이다. 마라모티가 2005년에 사망한 이후 그의 두 아들과 딸인 루이지(Luigi), 이그나치오(Ignazio)와 루도비카(Ludovica)가 사업을 이어받아 가족경영으로 운영되고 있다. 다른 회사들에 비해 더욱더 회사활동의 외부노출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편이다. 마라모티 사후 그의 바람대로 유럽과 미국의 현대예술을 반영한 중요하고 규모가 큰 컬렉션이 대중에게 공개되었다.안정된 삶을 추구하는 지적이고 클래식한 여성을 타겟 으로 그들 라이프 스타일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노력한다. 막스마라 컬렉션은 완벽한 커팅과 정확한 비례감이 특징이고 클래식 스타일과 최고급 소재의 사용으로 고급스러움이 보여진다. 사업분야는 패션,의류,액세서리,안경, 가방 등이다. 여성복이 주력상품이며, 이외에도 스포트막스(Sportmax), 스포트막스 코드(Sportmax Code), 위크엔드 막스마라(Weekend Max Mara), 마렐라(Marella) 및 마리나 리날디(Marina Rinaldi) 같은 35종류의 상표를 가지고 있다. 막스마라스타일은 ‘도시 여성의 지적인 삶의 표현’이라는 컨셉을 바탕으로 베이직과 심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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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키노(1950~1994,이태리,남)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생이다. 편모 슬하였지만 유복한 생활을 하였다. 밀라노 미술학교에서 유화를 전공하였으며 지아니 베르사체의 일러스트레이터 겸 보조 디자이너로 5년간 근무하였다. 1971년에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였다. 1979~1984년 고급기성복 회사 카데트의 디자인을 담당하다가 1984년 자신의 이름을 건 ‘모스키노’를 설립하였다.모스키노스타일은 명랑한 이탈리아인 기질 의 유머 감각과 화려한 색채 감각을 발휘한 캐주얼 패션으로서 여성의 섹시함과 활동성을 강조하는 의상이 주를 이룬다. 그는 과거의 예술적인 요소와 파리와 독일의 다다이즘의 전위예술을 자신의 패션에 적 용시켰다. 이러한 격렬한 성격과 전위적인 디자인으로 ‘밀라노의 반항아’ 또는 ‘이탈리아의 장 폴 고티에’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어떤 것이 좋은 취향이라고 말할 수 없고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한 스타일에 의해 패션 을 수용한다고 보았다. 그는 ‘패션은 인간의 인체나 볼륨이라는 제약 속에서의 창조성이며, 이 제약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예술일 뿐이다.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정신이며 디자이너는 소비자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의상으로서 세태를 풍자하는 디자이너라는 평을 받았다. 현재 모스키노의 사업영역은 의류,패션잡화,향수 등이다.








 


http://www.misson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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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니의 탄생에는 미소니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가족들간의 연대가 빠질 수 없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 4백 미터 장애물 이어달리기의 최종 주자로 참가하게 된 오타비오 미소니(이태리,남,사망), 그리고 그의 모습에 반한 로지타 젤미니의 만남은 결국 5년후 결혼으로 이어지게 된다. 수려한 용모의 오타비오는 육상 뿐 아니라 디자인에도 재능이 있었는데,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이탈리아 선수단의 유니폼이 바로 그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역시 란제리 회사 사장의 딸이었던 로지타, 그들의 결합은 자연스럽게 패션으로 발전되었고 그들은 결혼 후 엠마누엘 칸 등의 주문자 상표부착 방식으로 재품을 납품하다가 1954년, 드디어 미소니(MISSONI)라는 자 신들의 브랜드를 런칭하게 된다. 미소니의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패턴의 니트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되자 그들은 1966년 처음으로 밀라노에서 최초의 컬렉션을 갖게 된다. 니트가 패션의 세계로 진입한 순간이었다. 그 이후 그들의 직물 디자인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 외에도 아들과 딸이 디자이너로 가세해 완벽한 이탈리안 스타일의 패밀리 비즈니스로 오늘 날까지 이르고 있다. 미소니는 니트가 유명한데 무엇보다도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색채로 유명하다. 미소니의 컬러 팔레뜨는 40여가지의 기본 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서 10가지의 색을 선택하여 하나의 색 그룹을 만들어낸다. 항상 여러 색의 혼합이 디자인의 토대가 되지만 각 계절마다 이러한 색 상 그룹을 네 가지 설정하여 그것이 컬렉션의 주조색이 된다. 색은 조화라는 단어를 통해야 의미가 있다.고 말하는 오타비오의 천부적인 색채감각은 어느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그들만의 트레이드 마크를 만들어 낸 것이다 . 미소니 니트의 또 다른 매력은 소재의 조합이다. 굵기가 다른 실, 질감이 서로 다른 실을 몇 가닥 엮어 짠 것에 의해 생겨나는 미묘한 질감은 색채의 조화에 한층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처럼 부담없는 스타일과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오는 미소니스타일은 감성적인 오묘한 색채가 미소니의 영원한 상징이다. 현재 미소니의 사업분야는 패션브랜드, 핸드백, 선글라스,스카프,향수 등이다.










http://www.brion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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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오니는 1945년에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작된 핸드메이드 남성 정장 브랜드이다. 마스터 테일러인 Nazareno Fonticoli와 패션 디자이너 Gaetano Savini가 공동 창업했다, 브랜드명인 Brioni는 아드리아 해의 유명한 리조 트 이름을 본따 지었다. 처음부터 고집스러우리만큼 까다로운 생산 기준과 남다른 고급스러움 때문에 지역 명사들과 유럽의 부호들이 주로 애용했고, 50년대 이후 2차 대전으로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하는 미국 부호들이 로 마로 휴가를 자주 오면서부터 미국에까지 그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 1960년대 공업 기술이 발달하면서 많은 정장 브랜드들이 기계에 의존하기 시작할 때 브리오니는 꿋꿋이 사람 손에 의한 테일러링을 고집했다. 결국 그런 차별화, 혹은 고급화로 인해 브리오니는 현재의 흔들리지 않는 명성과 지위를 획득하게 된다. 남성복 중에는 가장 가격이 비싼 브랜드이다. 전 세계 명사들이 애용한다. 007시리즈에도 협찬되었다. 컬렉션은 고급스럽고 클래식함이다.












http://www.blumarine.com

http://www.annamolinari.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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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린은 이탈리아 국적의 브랜드이며 1977년 이탈리아의 조그만 마을인 카르피(Carpi)에서 안나 몰리나리(Anna Molinari)에 의해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1988년에는 회사명을 Blumarine에서부터 BLUFIN으로 바꾸면서 주식 회사로 전환하였다. 블루마린이란 브랜드 컨셉은 안나 몰리나리와 그녀의 남편 장파올로 타라비니(Gianpaolo Tarabini)가 가진 바다와 푸른 빛깔에 대한 열정에서부터 만들어 진 것이다. 1995년에는 ‘Anna Molinari’라는 새로운 라인을 설립하였고 ‘Anna Molinari’는 그녀의 딸 로셀라 타라비니(Rossella Tarabini)가 디자이너를 맡고 있다. 또 같은 해 젊은 여성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새로운 라인인 기성복 제품의 ‘Blugirl’을 런칭하였 고 이 라인은 안나 몰리나리가 직접 디자인하고 있다. 또한 1998년 Blemarine eyewear 라인을 런칭하고 이탈리아의 비지빌리아 그룹(VISIBILIA)그룹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였다. 스타일은 블루마린이 로맨틱하고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며 안나몰리나리는 엘레강스하고 모던한 느낌이고 블루걸은 컬러풀하고 활동적인 느낌이다. 남성복 최상을 브리오니로 친다면 여성복은 블루마린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사업분야는 여성의 비치웨어, 언더웨어, 웨딩드레스, 걸 컬렉션, 핸드백, 벨트, 지갑, 구두, 선글라스, 시계와 여성 액세서리 등을 만들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침구류의 홈웨어, 식기, 컵 등의 테이블웨어 리조트 산업에까지 사업을 확장 해 가고 있다.










http://www.bulga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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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태생인 장인의 아들 소티리오 불가리(Sotirio Bulgari,19c~D,이태리, 남)가 1905년 이탈리아 로마에 설립한 보석회사이자 브랜드명이다. 19 세기 중반 이태리로 이주한 뒤 100년 이상의 전통에 현대적 감각을 절묘하 게 섞은 이탈리아 컨템포러리 보석 브랜드로 그리스의 고적학적인 미를 이탈리아의 우아 함에 매치시켜 유명해진 브랜드. 후에 그의 아들 콘스탄티노 불가리에 의해 이어져온다. 사업분야는 보석,액세서리,향수,호텔사업 등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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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니베르사체 (Versace, Gianni,1946.12.2 ~ 1997.7.15, 이태리, 남)는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이다.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전통을 현대화한 신고전주의자로 아테네 여신의 저주받은 메두사를 브랜드 로고로 사용했다. 섹 시하고 육감적인 여성의 아름다움을 디자인 이미지로 삼았다. 남녀 모두에게 가죽옷을 입혔고 금속성 직물을 기계로 짜는 데 성공했다.베르사체스타일 특징은 무엇보다도 몸의 실루엣을 그대로 살려주는 스트레치 소재의 시 드 드레스, 과감한 컬러, 부드러운 주름과 선을 강조하여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자유롭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여동생 도나텔라 베르사체(1946년~, 여)는 베르사체의 뮤즈 역할을 하였으며 베르사체의 세컨드 라인인 베르수스 라인을 디자인했다. 그녀는 베르사체의 정신을 지키면서도 오빠가 소홀히 했던 모던하고 산뜻한 면을 부각시켜 좀더 실용적인 의상을 만든다는 평을 받는다. 1982년 오키오 도로상, 오스카 패션상 등을 수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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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아일랜드는 남성의류 전문 브랜드이다. 남성 옷 중에 아름답다고 할 수 있다. 스포츠웨어 기업인 C.P.Company에 속해져 있다. 까를로리베티(Carlo Rivetti,1956~,이태리,남)가 설립자이다. 그는 80년대 웅가로,아르마니 ,발렌티노등 유명한 브랜드를 라이센스 계약으로 제조해 Made In Italy 붐을 이끌었던 GFT그룹 설립자의 아들이다.1993년 여동생 크리스티나와 함께 C.P.Company를 인수했다. 스톤아일랜드는 독특한 염색방식, 군용 및 항공 기에 들어가는 질긴 소재,기능성을 갖추고 있어 캐쥬얼웨어 분야에서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사업분야는 아직까지는 남성의류가 주 분야이고 여성 및 신발부분에도 야망을 갖고있다.











http://www.iceber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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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아드리아해에 인접한 MARIGNANO에서 SILVANO와 GIVLIANA GERANI부부에 의해 세워진 GILMAR사는 여섯 대의 기초적인 편직 기계로 COLORFUL한 니트의 제작을 시작하여 오늘날에는 400명이 넘는 직원과 최신의 생산 디 자인 장비를 갖춘 세계적인 의류회사로 성장했다.1974년에 런칭된 ICEBERG는 GILMAR사의 가장 중요한 BRAND이며 GILMAR사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ICEBERG는 미국 월트디즈니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HISTORY LINE을 전개하여 많은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월트디즈니 만화영화에 나오는 동물 캐릭터 중 미키마우스, 도날드, 프루토들은 꾸준한 인기를 누리며 스웨터, 티셔츠, 자켓, 점퍼에 자주 소개되고 있다. 스타일은 무채색과 파스텔이 조화된 터프함이다. 루이비통드레스셔츠, 돌체&가바나의 셔츠, 아이스버그의 니트는 조직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이 즐겨할 웨어이다. 사업분야는 패션, 안경, 시계, 액세서리 등이다.










http://www.annamolinari.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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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린을 설립한 안나몰리나리(1950년대 출생,이태리,여)는 1995년에 ‘Anna Molinari’라는 새로운 라인과 젊은 여성들을 주 고객으로 하는 새로운 라인인 기성복 제품의 'Blugirl’을 런칭하였다. 안나몰리나리는 그녀 의 딸 로셀라 타라비니(Rossella Tarabini)가 블루걸은 안나 몰리나리가 직접 디자인하고 있다. 스타일은 블루마린이 로맨틱하고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며 안나몰리나리는 엘레강스하고 모던한 느낌이고 블루걸은 컬러풀하고 활동적인 느낌이다.










http://www.anteprim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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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프리마는 홍콩에서 198년 사이트페임이라는 회사에서 출발되어 1993년 일본계 이즈미 오기노(Izumi Ogino)에 의해 출시된 브랜드로 럭셔리하면서도 컨템퍼레리한 스타일을 선보여왔다. 안테프리마스타일은 ‘Modern Luxury’를 지향하며 다양한 액세서리가 동원된다. PVC소재를 많이 사용하고 하이 퀄리티의 니트웨어가 유명하다.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가방,시계 등이다.










http://www.albertaferrett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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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타페레티(1950~,이태리,여) 드레스는 이탈리아의 작은 해변 마을에서 양재사인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만들기의 사랑을 물려 받았다. 그녀는 아르마니, 베르사체와 같은 하이 패션 브랜드를 판매하는 작은 디자이너 부 티크와 함께 그녀의 이름을 끼워넣기 시작하여 1974 년 그녀는 자신의 서명을 시작했고 1981년 자신의 디자인으로 데뷔했다. 밀라노에서 가장 창의적인 디자이너로 쉬폰의 여왕이라 불린다. 페레티스타일은 아름다운 구조와 부드러운 실루엣으로 네이비,그린톤을 이용한 우아한 아름다움이다. 특히 저녁 드레스는 무척이나 아름답다.사업분야는 패션,신발,액세서리등이다.










http://www.zeg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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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네질도제냐(1892~1966,이태리,남)에 의하여 설립된 에르메네질도제냐(Ermenegildo Zegna)는 창업 당시부터 '최고의 품질만이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기업 철학을 펼쳐왔다. 4대째인 지금까지 편안한 착용감과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세계적인 남성복의 대명사가 되었다. 창업자 에르메네질도 사망 후 그의 아들 알도 제냐와 손자인 안젤로 제냐가 회사의 경영을 맡게 되었으며 현재는 질도 제냐, 파울로 제냐, 안나 제냐 등 제냐가의 4대손들에 의해 경영이 이어지고 있다. 제냐는 원자재에서부터 완제품 생산, 판매 단계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직접 제어하는 ‘수직통합체계(Vertical Management System)’를 구축한 대표적 기업이 됐다. 끊임없는 연구개발과 창조 적 디자인, 그리고 최고급 천연원료만 사용하는 것을 기업철학으로 삼고 있으며, 이는 10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제냐스타일은 클래식한 스타일을 추구하면서 과장되지 않은 절제된 세련미 에 있다. 사업분야는 최고급 소비자 층을 타겟으로 한 남성 기성복은 물론 니트웨어, 스포츠웨어, 액서서리 등도 생산하고 있다.












http://www.etromilan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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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짐모 에트로(Gimmo Etro,1940~,이태리,남)는 ETRO s.p.a를 설립하였다.인도 카슈미르 지방의 전통 문양을 현대적감각으로 재해석한 페이즐리 문양으로 새로운 패션을 선보였다. 1981년 부터는 장신구 라인도 가동되었다. 짐모 에트로의 아들 킨에트로가 그 전통과 명맥을 이어가면서 유럽 최고의 품위를 상징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을 하고있다. 1993년 신라면세점으로부터 시작으로 지금까지 면세점, 백화점, 명품 관 등에서 ETRO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에트로스타일은 페이즐리 문양 및 기타문양으로 프린트된 아름다움이다.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향수,이불등이다.



















http://www.arman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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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지오알마니(1934~,이태리,남)는 이탈리아가 낳은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계 인사이다.1974년 Armani라는 남성복 상점을 오픈하였다.1975년 카레오티와 함께 회사 Armani S.p.A 설립하여 경영은 동료인 가레오티가 디자인 은 아르마니가 분담한다.1981년 서브 브랜드로 Emporio Armani와 Amani jeans를 함께 런칭하고 한걸음 나아가 Armani Exchange로 미국시장을 성공적으로 공략한다. 세컨드 브랜드로는 엠포리오 알마니.마리오.발렌티노등이 다.조르지오 알마니(Giorgio Armani)는 "나는 결코 모델을 위한 옷을 만들지 않는다. 움직이는 사람들을 위해 옷을 만든다" 라는 그의 철학처럼 아르마니는 20세기 패션 거장이자 영원한 품격이라고 칭송받는다. 1920년대에 샤넬, 1930년대에 디오르, 1960년대에 퀀트, 1980년대에 아르마니 라고 할 만큼 1980년대의 대표적 디자이너로 평가받는다. 알마니의 스타일은 쓸데없는 군더더기를 없애고 쾌적함을 강조하면서, 중후한 멋과 고품격을 나타 낸다. 사업분야는 서브브랜드 엠포리오(시장)가 의미하듯이 패션,슈즈,가방 뿐만 아니라 악세서리.식기,생활용품까지 다양하다.












http://www.gianfrancofer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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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안프랑코페레(1944~2007,이태리,남)는 이탈리아 레니아노 실업가 집안에서 출생하였으며 개성이 강하고 교양을 갖춘 페레는 1969년에 밀라노 공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에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하였다. 여 자 친구에게 액세서리를 만들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패션 디자이너로 전향한 후 1978년 여성복 컬렉션을, 1982년에는 남성복 컬렉션을 발표하였다.1983년에는 도무스 아카데미의 교수가 되었으며, 1989년 크리스티앙 디오 르의 스타일리스트 디렉터로 일하게 되었고, 오뜨쿠튀르 디자이너 최고의 영예인 황금골무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페레스타일은 조형미와 커팅의 로뎅 이라고 불릴 정도로 최고의 기술 지향이 특징이다. 사업분야는 남성 및 여성의류, 향수, 신발, 액세서리등이다.










http://www.piazzasempi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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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자 셈피오네는 1991년 로베르토 몬티·마리사 게리치오 부부가 밀라노의 피아자 셈피오네 거리에 플래그 숍을 열면서 출발했다. 이곳 작은 아파트에서 첫 컬렉션을 열며 브랜드 탄생을 알렸다. 이후 2006년 7월 대기업 LVMH가 지원하는 L캐퍼틀이 인수, 미국에서 성공을 거뒀다. 이어 아시아시장으로 확장했다. 올들어 가죽공장까지 갖추며 액세서리 라인도 강화했다. ‘경제적·정신적으로 독립한 여성’ 이 주고객층이다. 피아자 셈피오네 는 양대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가격이 10~15% 저렴하고 좀 더 캐주얼한 ‘블루’, 핸드메이드 전통을 중시하는 ‘사토리얼 테일러드’ 수트 라인이다. 셈피오네스타일은 간편함과 우아함의 조화이다.사업분야는 패션과 액 세서리이다.










http://www.fendi.com

이태리브랜드



이태리. 피혁제품을 다루고 있던 아드레 카사그란디(adele casagrande.D)는 1918년 아델르 카사그란데(Adele Casagrande,1987~1978,그리스,여)는 1918년 로마의 플레비시토 거리에 가죽으로 만든 소품과 모피를 판매하는 작 은 매장을 열었다. 아드레 카사그란데는 1925년도에 남편 에도알도 펜디와 결혼을 한후 상호를 펜디로 변경한다. 1965년은 펜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샤넬에서 활동하다 당시 끌로에라는 고급의상실에서 일하던 이탈리아의 천재 소년 칼 라거펠트를 영입하면서 세계적인 명품브랜드로 도약하는 기회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라거펠트는 즉시 펜디의 로고를 디자인했다. 두개의 'F'자가 역대칭으로 위치한 유명한 펜디로고가 바로 그의 작품이다. 라거펠트에 의해 모피는 재해석되기 시작한다.그때까지 모피는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값비싸고, 크고 무거우며, 눈에 띄어야만 했는데, 펜디와 라거펠트의 손을 통해 문화 혁명이 일어난 것 이다. 이들은 모피를 의복의 부드럽고 가벼우며 패셔너블한 하나의 아이템으로 변화시켰다. 이들은 모피를 의복의 부드럽고 가벼우며 패셔너블한 하나의 아이템으로 변화시켰다. 1980년대는 위기와 함께 새로운 도약의 시기 였다. 모피와 가죽제품에 대한 동물 애호가들의 강력한 저항운동과, 패션계에 불어닥친 '미니멀리즘'의 영향으로 많은 패션브랜드 들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특히 가급적 화려한 장식과 예술성을 지양하고 실용적이고 절 제된 미를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은 화려한 소재와 장식으로 세련미를 강조하는 '신고전주의' 경향을 추구하던 펜디에게는 다른 브랜드보다 더 큰 타격을 주었다. 악조건속에서 펜디를 구해낸 것은 5명 딸 중 둘째딸인 안나펜 디의 딸, 실비아 벤추리니였다. 실비아는 펜디의 대명사가 된 바게뜨백(옆구리에 끼는 가방,크로아숑백이라고 한다)을 시장에 내놓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펜디의 기적적인 부활을 이끌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펜디는 LVMH(루이비통 모엣헤네시 51%) 그룹과 펜디가족(49%)이 조인트 파트너로 운영하고 있다. 펜디스타일은 잘록한 허리선과 한껏 부풀어 오른 볼륨감이 만들어낸 환상적인 라인이다. 사업분야는 모피,패션,액세서리,향수,안경 등이다.












http://www.prada.com

이태리브랜드



미우치아 프라다는(Prada Miuccia,1949~,이태리,여) 할아버지 마리오 프라다가 운영하던 가죽사업을 이어받으면서 시작되었다. 나일론 소재의 실용적인 토트백(tote bag)을 만들어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형성한 이탈리아의 패션 디자이너이다. 평범하고 고급스러운 미니멀리즘의 경향과 독특한 소재로 품격 있고 지적인 분위기의 디자인이 특징이다. '아름답게 소박하고 소박하게 아름답다'라는 것이 그녀의 세계이다. 연약함과 성적 매력대신 자 신감을 내보일 수 있는 옷을 찾는 여성들을 위한 옷. 여성의 아름다움이 상품화 되지않으면서 여성스럽게 보일 수 있는 옷. 직업을 갖고있고 두 아이를 가진 자신에게 필요한 옷이 프라다의 컬렉션이다. 그녀는 사실 데생이 나 재봉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그녀가 하는 일은 자신의 우아함과 평화로운 분위기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강하지 않은 컬러로 지적인 옷을 만들어 내는 프라다의 의상들은 샤넬이나 아르마니의 수트, 이브생로랑의 재킷과 는 색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패션지식이라고는 그녀자신의 옷장에서 나오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프라다스타일은 활동적이고 유혹적이고 말쑥하고 소녀같은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세컨 브랜드는 20대를 위한 미우미 우(Miu Miu)가 있다. 사업영역은 패션,액세서리,가방,향수 등이다. 미전대통령 죠지 부시, 여배우 캐서린 햅번등이 수많은 유명인이 프라다를 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http://www.salvatoreferragamo.it

이태리브랜드



살바토레 페라가모(898~1960,남)는 이탈리아 나폴리 근교 보니토에서 태어났다. 보니토의 작은 구두점의 견습공으로 들어가 13살의 나이로 여성전용 맞춤 구두점을 오픈했다. 1920년 미국 헐리우드로 건너가 본격적인 구두 제작을 시작했다. 헐리우드에서 그는 영화제작에 필요한 신발과 헐리우드 명배우를 위한 우아한 스타일의 고급 구두를 디자인하였고 그것을 시작으로 현재의 페라가모 브랜드를 완성하였다. 페라가모는 편한 신발을 만들기 위하여 해부학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페라가모의 컬렉션은 편안하고 스타일이 뛰어나다. 요즘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라는 모토아래 구두제품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토털 패션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취급품목은 남녀 기성 복을 포함해 벨트, 스카프, 가방, 각종 액세서리 등이다.












http://www.calvinklein.com

미국브랜드



디자이너 진과 언더웨어, 아메리칸 룩의 선구자 캘빈 클라인(Calvin Richard Klein,1942~,미국,남)은 패션계의 가장 큰 거물 중 한 명이다. 소년 시절부터 스케치와 재봉 기술을 혼자서 터득했다. 뉴욕의 아트 앤드 디자인 하이스쿨과 테크놀로지 패션스쿨을 졸업한 그는 1968년 친구 '배리 슈와츠'와 함께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출시했다. 현대 광고계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요지야마모토처럼 검은색을 즐겨 사용한다. 캘빈클라인스타일은 모던하고 심플하다. 사업분야는 진, 구두, 가방, 아동복, 언더웨어, 수영복, 잠옷, 양말, 시계, 향수, 아이웨어 등이다.










http://www.dkny.com

미국브랜드



도나카란(1948~,미국,여)은 남편 스테판 바이스 와 함께 1984년 회사를 설립했다. 그리고 1988년에 DKNY를 탄생시켰다. DKNY는 곧대중적인 브랜드로 성장했고 진스(DKNY JEANS),스포츠 웨어(DKNY ACTIVE), 속옷(DKNY UNDERWEAR)등 여러분야 섭렵했다. DKNY와 캐쥬얼 브랜드 DKNY 진스,DKNY 엑티브 등은 각각 룩을 완성시키는 액세서리 라인까지 구성되어 있다. DKNY 우먼의 타깃은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의 영 커리어 우먼으로, 현대적이 며 유행을 앞서가는 여성을 중심으로 하며,DKNY 맨은 뉴욕의 감성이 담긴 DKNY의 남성복으로 현대적이고 도회적인 동시에 심플한 개념이 도입된 정장과 캐주얼을 선보인다. 도나카란의 디자이너 감성이 느껴지는 소프트한 캐주얼 라인과 남성의 섹시함이 표현된 비즈니스 웨어 라인으로 구성되며, 25-30세의 세련된 남성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 DKNY의 컬렉션은 심플함, 독창성, 블랙 컬러의 광범위함을 강조하는 디자인으로 유명하다.사업영역은 패션,액세서리,시계,화장품이다. 도나카란스타일은 실용성과 여성미를 함께한 커리어 우먼 룩이다.


















http://www.daks.co.kr

미국브랜드



DAKS는 "DAD + SLACKS"의 합성어로서 1933년 SIMPSON 형제가 세계 최초로 디자인한 SLACKS의 이름을 명명한데서 그 상표가 유래되었다. 설립자 SIMPSON의 아들인 SIMPSON 형제는 세계 최초로 SELF-SUPPORTING WAISTBAND(자 동조절밴드)가 부착된 바지를 디자인하여 당시 일반인들의 바지에 대한 기존 개념을 바꿔 놓았으며, 또한 상품화에 크게 성공함으로써 DAKS-SIMPSON社의 발전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DAKS의 대표적 로고인 DD마크는 DAKS 의 머릿글자인 D자를 균형있게 결합시켜 놓은 것으로서,로고 중간의 줄 표시는 세계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모든 DAKS 제품간의 풀 코디네이션 및 컨셉트의 통일을 의미하고 있다. 닥스스타일은 더블D장식을 이용해 시크하고 럭셔리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특징이다. 사업영역은 패션,홈 컬렉션,의류,향수 등이다.










http://kr.ralphlauren.com

미국브랜드



랄프 로렌은 미국의 세계적인 패션비즈니스 회사 Polo Ralph Lauren Corporation창업자 CEO 이다. 1967년 'Polo fashions'라는 브랜드명의 넥타이 사업으로 시작하여 1968년 고급 남성복으로 확장, 독립적인 회사로 발전시 켰다. 폴로가 설립된 이래 30여 년 동안, 랄프 로렌은 패션산업에서 라이프 스타일을 디자인에 가시화했을 뿐만 아니라 독특한 마케팅 전략을 통해 폴로 랄프 로렌과 연관된 미국적인 사고를 반영시켰다. 랄프로렌은 전세계 디자이너 중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디자이너 중 한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폴로 랄프로렌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폴로는 스포츠용 의류이고 그냥 랄프로렌은 샤넬이나 다른 브랜드와 별 차이가 없는 의류브랜드이다. 한국에서는 1998년 2월부터 두산그룹에서 국내에서의 폴로 브랜드 독점사용권에 대한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였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수많은 패션 어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캘빈클라인이 청바지의 전형 을 만들어 냈다면 랄프 로렌은 전형적인 미국적 스타일을 창조해냄으로써 한 나라의 문화적인 모든 요소들을 오케스트라의 연주처럼 다양한 그러나 하나의 울림으로 이루어내는데 성공한 디자이너이다. 랄프로렌스타일은 편안하고 세련됨이다.특히 여성의류는 여성의 라인이 이쁘게 드러나는 슬림핏 라인의 여성스러운 옷들이 많다.사업영역은 패션,홈 컬렉션,의류,향수 등이다.












http://www.michaelkors.com

미국브랜드



뉴욕 롱 아일랜드 출신인 마이클 코어스는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중의 한명으로 업타운 쉬크를 가장 잘 표현하는 디자이너로 평가받고 있다. 패브릭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 마이크 코어스는 평소 ‘패션은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입었을때의 느낌 또한 중요하게 생각한다’던 그의 패션 철학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형적인 블론드 헤어, 푸른 눈을 가진 미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마이클 코어스는 모던하 면서도 럭셔리한 스포츠 라인을 선보이고 있다. 마이클 코어스의 스타일은 귀족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도시인들의 감성도 함께 담고 있다. 그의 디자인을 스스로 젯셋(jetset)류로 표현하고 있다. 컬렉션은 패션 쇼 에서 도발적이고 튀는 디자인으로 이목을 끌지만 일상 생활 속에서 착용하기엔 가히 부담스러운 의상보다는 일상 생활과의 접목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의상을 디자인한다. 그는 튀는 화려함만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 닌 화려함 속에서 나오는 세련되고 실용적인 의상, 우아함과 동반하는 섹시함, 클래식하고 현대적인 디자인과 믹스 매치의 중요성을 살린 의상을 선보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사업분야는 의류, 슈즈, 향수, 아이웨어, 스포츠 웨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성장해나가고 있다.










http://www.marcjacobs.com

미국브랜드



1993년 마크 제이콥스(1963~,미국,남) 인터내셔널을 창립했다. 이후 마크 제이콥스 룩이라는 세컨드 라인과 남성복 컬렉션을 런칭해 더욱 주목을 받고 있던 도중 1997년 드디어 루이 비통의 수석 디자이너로 합류했다. 오랜 전통의 벽을 깨면서도 최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는 과제를 떠안은 마크 제이콥스가 기존의 엘레건트한 요소에 스포티하고 캐주얼한 감각을 결합시키면서 루이비통은 전세계 패션인들의 패션 교과서가 된다. 트 렁크로 고정되어 있던 루이비통에서 대담하고 파워풀한 의상들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컬렉션은 고급스럽고 심플한 1970년대 복고풍을 연상케 하고 이것은 1980년대 룩을 부활시킨 루이비통 컬렉션과 일맥상통한다 . 그는 21세기의 랄프로렌이라고 불리는 멋진 디자이너 이다. 그의 이름을 걸은 패션쇼에는 미국최고의 사교무대라고도 불리고 지금 세계패션계에서 제일 유명하고 입지가 높다. 마크제이콥스스타일은 예쁜 디자인의 대명사 이다. 사업분야는 의류, 구두, 가방, 액세서리등이다.


















http://www.bananarepublic.com

미국브랜드



GAP, GAP KID, Bannana Republic, Old Navy 등으로 구성된 GAP Group의 브랜드로서 1983년에 매입하여 본격적인 확장에 들어간 미국 브랜드이다.

1969년 미국 도널드(Donald)와 도리스 피셔(Doris Fisher)가 샌프란시 스코에서 1개의 매장으로 시작하였다. ‘banana republic’은 아프리카 지역의 바나나등의 농산물을 유일하게 수출하는 소국가를 지칭하며 보통 독재자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체제를 말한다. 시사적인 의미로 banana republic을 언급한다면 언론의 자유가 없는 독단적 리더의 단일 체제를 뜻하는 것이다. 컬렉션은 Safari Wear를 주 컨셉으로 하여 Theme Park를 주제로 한다. 아프리카 사파리와 같은 동물 들을 디스플레이 하였었는데 최근 에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의류뿐 아니라 침구와 홈패션에 이르기 까지 LIFE STYLE을 제시하는 TOTAL COLLECTION 전개하고 있다. 가격면에서는 중간명품 정도이다.사업분야는 여성의류, 남성의류, 액세서리, 신발, 쥬얼리등 이다.












http://www.victoriassecret.com

미국브랜드



미국의 속옷 디자인 브랜드이다. 세계각국의 유명 패션모델들이 캣워크에서 서기도 해 유명하다. 세컨드 브랜드로는 젋은층용 Pink등이다. 중산층을 대상으로 대중적인 제품(Mass Product)과 명품(Prestige Product)의 중간 정도에 위치한 중고가 제품을 판매하는 ‘매스티지(Masstige)’ 라고한다.

빅토리아즈 시크릿은 1990년에 설립된 애송이 매스티지 브랜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브랜드를 지금 애송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록 회사와 브랜드의 역사는 다른 브랜드와 비 교해 매우 짧지만, 그들이 이룬 마케팅 성공은 그 어떤 브랜드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1998년 미국 광고시장에서 가장 비싼 시간대인 수퍼볼 중계방송에서 빅토리아즈 시크릿이 대형사고를 쳐 화제가 되었다.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끝나갈 무렵, 빅토리아즈 시크릿은 ‘지금 이 시간에 자사 브랜드의 슈퍼모델 선발대회가 인터넷으로 생중계되고 있다’고 광고를 한 것이다. 그런데 광고가 나가자마자 수백 만 명이 동시에 접속하는 바람에 사이트가 몇 차례나 다운되는 사태가 벌어질 정도였다. 어쩌면 이 광고로 인해 빅토리아즈 시크릿은 전국적인 거물로 태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아름답고 뇌쇄적인 충격의 기억을 새겨 놓았 을 것이다. 이런 상상은 바로 매출로 연결되었고, 매장 방문자 수의 급증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기에 이르렀다. 매장 방문자 수의 성비는 1대9 정도로 여자가 압도적이었으나 이제는 4대6으로 남자의 비율이 증가일로에 있 고, 특히 사이트 방문자의 경우는 완전히 역전된 6대4의 비율을 유지하게 되었다. 이는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정보를 검색하거나 실제 구입해 선물하는 경우가 늘어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렇게 빅토리아즈 시크릿은 섹시하고 도발적이며 여성스럽고 아름다운 디자인 컨셉트로 미국의 한 유력 설문조사에서 남자들로부터 자기 애인에게 선물하고 싶은 속옷 브랜드 1위 로 뽑히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슈퍼모델들은 앞 다퉈 빅토리아즈 시크릿의 모델로 캐스팅되기를 원하고 있는데, 그 행운은 도발적인 이미지로 명품 브랜드 디자이너들이 가장 선호하는 체코 출신 모델 캐롤리나 쿠르코바가 바로 빅토리아시크릿의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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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브랜드



베라왕(1949~,중국계 미국인,여)은 보그 매거진 수석 패션 에디터이다. 1985년 Ralph Lauren 디자인 감독이기도 했고 1990년 뉴욕 카릴 호텔에 숍 개장, 1994년 낸시 케리건의 올림픽 유니폼 디자인등을 맡았다. 제니퍼 로 페즈, 제시카 심슨, 샤론 스톤 등의 웨딩드레스와 한국 배우 김남주, 심은하의 웨딩드레스 디자이너이기도 했다. 베라왕의 웨딩드레스는 유명하다. 베라왕스타일은 루즈한 실루엣의 의상들로 화려하지는 않지만 편안한 느낌 을 준다. 사업분야는 패션 및 향수, 드레스이다.










http://www.tiffany.com

미국브랜드



미국의 보석회사 브랜드명이다. 1837년 미국의 찰스 티파니(Charles L. Tiffany,1812~사망,영국,미)와 존 영(John B. Young)이 뉴욕에 세운 보석회사이자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명이다. 최상급의 원석만을 사용하고 특별한 세팅기술을 갖춘 회사로 유명한데 특히 반지제품은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결혼반지로 미국 명품의 자존심으로 통한다. 찰스루이스 티파니는 뉴 잉글랜드의 작은 시골마을 코네티켓주의 킬링리에서 태어났다.그의나이 15세 에 아버지의 면화공장 일을 도우면서 판매업에 눈을 뜨게된다. 출장차 다니던 뉴욕을 본 찰스는 1837년 아버지에게 1000$을 빌려 학교친구인 John B,young와 동업으로 뉴욕에 문구류와 선물가게를 연다. 티파니가 보석상으 로 자리잡게된 계기는, 파리혁명당시 파리에 물건을 사러갔던 매수인들의 보석을 팔아치우며 달아나던 귀족들에게서 싼값에 산 보석을 넘겨받게되고,(당시 약 50만불어치의 보석중 프랑스왕관의 보석이 있었다한다.) 티파니 는 그렇게 사들인 보석으로 보석상의 대명사로 불릴 준비를 하게된다. 찰스는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들여오는 다이아몬드로 유명해져 이때부터 "다이아몬드의 제왕"으로 명칭을 얻게된다. 1850년 뉴욕시에서 Tiffny & Co.를 설립한다. 그는 당시 상거래의 기본인 흥정거래를 무시하고 최초로 가격 정찰제로 프라이빗 고객관리를 한다. 후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보석디자인 개발로 명성을 쌓기 시작 하였다1902년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사망하고 그의 아들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 (Louis Comfort Tiffany)'가 가업을 이어 받았다. 보석하면 까르띠에와 티파니를 꼽는데 무리가 없다. 까르띠에 주얼리가 달콤한 고급스러움이라면 티파니 주얼리 는 심플하고 세련된 타임리스 디자인으로 대표된다.보석 및 패션분야를 사업분야로 한다.












http://www.coach.com

미국브랜드



코치는 미국브랜드이다. 1914년 한 가족이운영하던 워크샾으로 시작하였다.

상위10%만의 가죽을 사용하고 있어 가죽으로서는 높은 퀄리티를 자랑하는브랜드이다. 코치스타일은 한 마디로 앙증맞다. 사업분야는 액세서 리 전문 브랜드로 핸드백, 열쇠고리, 여성용지갑, 구두, 밸트, 샌달 등이다.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신발,보석 등이다.














http://www.sjk.com

미국브랜드



센존이란 미국의 유명 브랜드 명칭이며, 센존 브랜드가 세계적인 명품으로 자리 매김 한 것은, 레이건 대통령 부인인 낸시여사가 착용하면서 알려 졌으며 클린턴 대통령 시절 영부인인 힐러리 여사가 공식 석상에 주로 즐겨 착용함으로서 그 유명세를 명품 대열에 끌어 올려 놓았다. 센존은 주로 니트 여성용 정장류로만 전개되는 브랜드며, 소재 역시 wool 80% viscose rayon 20%로된 강연사만 주로 고집하고 있다. 센존은 천을 짜고 만드는 모든 방법을 니트식으로 하고 있어서 매우 착용감이 편하고 활동성이 우수한 장점을 갖고 있는 반면, 옷의 실루엣이나 드레이프성이 떨어져 예쁜 옷을 만들기가 좀 처럼 싶지 않다. 그러나, 국내 유명 부띠끄 브랜드에서 센존 스 타일을 국내에 전개 하면서 천을 짜는 것은 니트식을 채택하였으나 만들 때에는우븐식으로 패턴을 만들어 재단하는 방식으로 보완하여 고객이 착용하였을 때에 실루엣이나 드레이프성을 충분히 표현하도록 하였다. 한가지 방식으로 만든 센존 오리지널 보다 힘들고 까다롭지만 두가지 방법을 동시에 병행하여 편안하고 활동성 있으면서도 옷의 태를 강조한 국내의 센존 스타일 옷들이 훨씬 우수한 디자인과 품질을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이런 영향으로 인해 센존 오리지널도 한국발 센존 스타일을 많이 흉내 내어 제품의 다양성을 꽤하고 있다. 스타일은 모던하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 기본 모토였으나 최근에는 젊고 우아함도 같이 곁들이고 있다.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신발,가방,향수등이다.














http://www.anneklein.com

미국브랜드



앤클라인(1923~1974,미국,여)은 1968 년 설립되었다. 유명한 도나카란이 헤드디자이너로 있었다. 앤클라인스타일은 한마디로 활동적인 오피스룩 으로 정통 아메리칸스타일이다. 앤클라인은 현재 존스 어패럴 그룹의 소유이 다.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신발등이다.









http://www.tsecashmere.com

미국브랜드



TSE는 미국의 최고급 캐시미어 니트 전문 브랜드로 순수한 감성과 현대적 감수성을 동시에 표방, 하이 퀄리티의 제품을 통한 고객 만족 실현을 브랜드 목표로 삼고 있다.'섬유의 보석’이라 불리는 캐시미어의 가치를 최고 로 높여온 브랜드로서 캐시미어라는 소재의 제약을 극복하고 색다른 느낌의 니트웨어로서의 패션분야를 개척해 왔다. TSE의 역사는 1988년 AUGUSTIN TSE가 캘빈 클라인 수석 디자이너 ALEXIO와 디자인팀을 스카웃하면서 시 작됐다. TSE는 최상의 캐시미어를 얻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산양 사육에서부터 완제품 생산에 이르는 생산 공정 하나 하나를 까다롭게 체크·관리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독특하고 새로운 캐시미어 가공술의 노하우 를 간직하고 있는 TSE는 캘빈 클라인, 겐조, 도나 카렌, 질 샌더 등 유명 디자이너에게 최고급의 캐시미어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그 품질을 입증하고 있다. TSE스타일은 소재의 고급스러움과 간결하면서도 고급스러움 이미지 연출에 있다. 사업분야는 의류,액세서리이다.












http://www.burberry.com

http://www.burberry-bluelabel.com

영국브랜드



토마스 버버리(사망,영국,남) 1856에 창립. 당시에는 비가 자주 오는 날씨에 적합한 레인코트를 제작하다가 당시 영국의 국왕 에드워드7세에게까지 명성이 알려지면서 (당시 국왕은 코트의 애칭으로 버버리코트 라고 부르기 시작함) 현재의 버버리 의류브랜드 완성되었다. 버버리프로섬과 세컨브랜드로 버버리블루라벨, 버버리블랙라벨, 버버리키즈 등이 있다. 브랜드의 이름이 고유명사화될 만큼 코드의 대명사가 된 브랜드이다. 컬렉션은 포멀한 정장과 클래식한 코디 아이템들로 구성되어 있고 버버리스타일은 섬세한 테일러링을 바탕으로 하는 스타일이다. 버버리 프로섬 라인은 몸에 꼭 맞는 슬림 피트로 젊은 감각의 수트를 선보인다. 사업분야는 의류, 가방, 핸드 백, 시계, 향수, 숄, 액세서리 제품이다.
















http://www.dunhill.com

영국브랜드



던힐은 창업주 알프레드 던힐(Alfred Dunhill)이 21세인 1893년 3대째 내려오던 가업인 마구(馬具) 제조업을 물려받으면서 시작되어 백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남성용 제품만 연구해오고 있다. 영국 듀크가에 처음 매장을 열어 자동차 액세서리 사업을 시작한 Alfred Dunhill은 시거와 파이프, 담배 사업 등에 이르기까지 항상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사업을 전개해 왔다. 기존의 성냥과 라이터는 야외에서 사용하기에 불편하고 휴대하기 어렵다는 사실 을 깨달은 그는 이를 보완하기 위한 디자인을 개발함으로써 던힐 라이터의 시작을 알렸다. 그 후 기능과 품질을 인정받아 소유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품격과 스타일을 대변해 주는 명품으로 자리잡았다. 1896년 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던 당시 자동차 관련 제품을 개발한 던힐은 운전할 때 착용하는 가죽코트에서 보온용 장갑, 고글, 가방까지 운전자에게 필요한 소품과 의류를 만들었으며 이것을 시작으로 패션 부문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패션의류 사업의 번창으로 1920년대에는 뉴욕, 런던, 파리에 차례로 단독매장을 오픈하여 국제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던힐스타일은 컨츄리풍을 풍기는 상품이 많다. 오늘날 던힐은 사업분야가 시계,액세서리,필기구,가 죽제품,남성의류 분야에 진출해 있다.














http://maisonmartinmargiela.com

영국브랜드



마틴 마르지엘라(1957~,영국,남)는 벨기에 출신으로 영국 브랜드이다.1979년 Belgium에 있는 Antwerp Royal Academy of Arts를 졸업하여 1984년 당시 아방가르드의 대명사 장 폴고띠에의 밑에서 3년간 일을 하였고 그후 1988년 마르지엘라의 Maison Martin Margiela를 설립 하였다. 이 시대의 해체주의 디자이너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그는 또한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상상할 수 없는 재료(병마개, 카드, 벨트등)로 옷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 하며 뛰어난 상상력의 소유자 이다.그의 상품에는 숫자가 매겨져 있는데 마르지엘라스타일은 신비감이다. 사업분야는 패션,의류,구두등이다.










http://www.stellamccartney.com

영국브랜드



스텔라맥카트니(1971~,영국,여)는 파리 패션하우스 클로에(Chloe) 수석 디자이너이다.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의 딸이며 영국소녀들의 우상이다.15세 때부터 '크리스찬 라크르와'의 첫 꾸뛰르 컬렉션을 도왔으며, ' 사빌 로우'에게서 몇 년간 기술을 터득하는 등 패션계에서 이미 오랜 견습기간을 가졌다. 1995년 영국의 유명 디자인 스쿨인 세인트마틴의 졸업 전부터 자신의 의상을 탑모델 나오미 캠벨과 케이트 모스에게 입혀서 화제.스 텔라 매카트니는 2002년 첫 패션숍'스텔라 매카트니(Stella McCartney)'을 열었다. 맥카트니스타일은 입셍로랑의 깔끔함과 알렉산더왕의 스타일리쉬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여성을 최대로 표시하여 섹시하면서 웨어러 블하다. 사업분야는 패션,슈즈.가방,액세서리등이다.












http://alexandermcqueen.com

영국브랜드



알렉산더맥퀸(1969~,영국,남)은 6째중 막내로 태어나 16살에 학교를 떠나 지브와 하크 라는 의상제작거장에게서 견습생 생활을 하게된다.거기서 무대복업자인 에인절과 버만으로 이직, 세련된 복식을 터득하게 된다. 센트럴 세인트마틴스예술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했다. 세인트 마틴을 졸업할 때 졸업작품이 모두 팔리며 이름을 떨치게 된다.세인트 마틴을 떠난 10년이 안되어 알렉산더 맥퀸은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되었다.1996, 1997, 2001, 2003년 올해의 영국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린다. 1996~2001년까지 지방시 하우스 수석디자이너였다. 2003 미국 패션디자인협회(CFDA)에서 그해의 국제 디자이너상 수상했다. 지금은 구찌 그룹이 맥퀸사의 51% 이상 사들였다고 한다. 맥퀸스타일은 한마디로 무대의상을 연상케하는 현란함이다.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신발,가방등이다.










http://www.johngalliano.com

영국브랜드



존갈리아노(1960~,영국,남)는 스페인 지브로올터에서 태어났다. 지방시와 크리스챤디올의 수석디자이너이다. 1997년 크리스찬 디올 하우스에 화려하게 입성, 오트 쿠튀르의 부활에 톡톡히 한몫을 한 그는 과감하고 정열적인 디자인과 완벽한 테일러링으로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갈리아노스타일은 과감하고 민속적이며 낭만적 여성적 전위적이다.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신발등이다.












http://www.paulsmith.co.uk

영국브랜드



폴스미스(1946~,영국,남)는 스마트하면서 쿨한 의상과 독특한 액세서리로 영국 분위기를 만들어낸 유명한 디자이너이다. 지극히 평범한 환경에서 자라난 그에게 는 많은 디자이너들처럼 패션에 대한 구제적이고 특별한 과정 은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의류 창고에서 일하는 검소하고 선량한 사람이었고, 아트 스쿨 학생들이 득실대던 노팅엄의 한 술집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우연히 의류 창고에서 일하게 된 것이 소박한 출발이라고나 할까? 패션 부티크를 여는 한 여자친구를 도와주면서 구체적인 일들을 배우기 시작하게 되고, 그 후 평생 반려가 된 폴린(Paulin)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로얄 컬리지 오브 아트에서 공부한 재원으로 그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준 평생 의 반려였다. 구체적으로 그의 부티크를 열도록 조언을 하게되고 1970년 10월 노팅엄에 부티크를 열게된다. 폴스미스스타일의 정의를 말한다면,그의 표현대로 '트위스트가 있는 클래식' 이라는 표현을 한다. 한마디로 폴스 미스스타일은 젊음 그 자체이다. 1987경에 필로 박스, 복서 바지, 꽃무늬 셔츠를 유행시킨 것 외에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각인된 다양한 멀티컬러 스트라이프로 줄무늬의 선구자라는 애칭을 듣고있다.사업분야는 의류, 가방, 지갑등이다.












http://www.aignerworld.com

독일브랜드



아이그너(1904~2000,독일,남)는 1904년 헝가리의 에르세쿠바르에서 태어나 핸드백과 벨트를 생산하는 업체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가 지닌 특별한 가죽제품 디자인의 재능은 당시 디오르, 자크 파스, 몰리뇌 등의 패션 업체 로부터 디자인 주문을 받으며 패션계에의 관심을 끌었다. 1930년 파리 오트쿠 튀르(고급 맞춤복)에서 가죽에 열정을 담은 독특한 핸드백 컬렉션을 선보인 43년 한 레지스탕스 단체에 가담하기도 했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파리에 다시 돌아와 액세서리 디자인을 시작한 그는 1950년 뉴욕으로 진출한 뒤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흑적색(黑赤色) 벨트를 자기 집 겸 공장인 한 아파트에서 만들기 시작했다. 1950년대 중엽부터 고급 백화점들이 그의 벨트와 핸드백을 전시하기 시작했고 이후 미국내외에서 주문들이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까지도 아이그너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최고 소재의 가죽을 통한 명품의 창조라는 장인 의식을 바탕으로 소수의 상류 계 층을 상대로 사랑을 받게 된다. 유럽 상류 사회에 한정되어 면면히 전해져 오던 아이그너의 명성은 점차 전 세계 패션 애호가들에게까지 전해졌다. 1950년대 중엽부터 고급 백화점들이 그의 벨트와 핸드백을 전시하기 시작 했다. 그의 가죽 핸드백 역시 1960~1970년대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64년 뮌헨에서 향수제품과 더불어 독창적으로 개발한 와인 컬러의 특이한 염색법을 이용한 가죽제품들을 출하, 당시 유럽의 상류층 인사로부터 폭 발적인 호평과 더불어 명품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이에 힘입어 수공업적인 가족 경영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생산 체제에 들어가기 위해 아이그너 뮈니히(AIGNER MUNICH)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이어 1967년 자신 의 브랜드를 매각했고 드레스 메이커인 조너선 로건이 이를 인수했다. 이후 상승세를 탄 아이그너는 가방, 신발, 스카프ㆍ넥타이ㆍ향수 등 액세서리류 등 아이템을 다양화하고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독일 브랜드 아이그너 (AIGNER)는 엄선된 재료와 아주 작은 것에도 정성을 다하는 최고의 서비스, 최고의 아름다움, 그리고 높은 격조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이그너스타일은 자유,순수,세련된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독일 지성의 명품 이다.사업분야는 고품격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의류와 피혁류, 뿐만 아니라 시계류, 보석류, 액세서리류, 선글래스류, 화장품류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아이그너는 역시 액세서리와 시계.보석분야가 전문이다.














http://www.escada.com

독일브랜드



Escada는 escada Margaretha과 볼프강에 의해 1978 년에 독일에서 설립되었다. 1994년 세그먼트를 패션(Escada 컬렉션 및 Escada 스포츠), 액세서리 (가방, 신발과 작은 가죽 제품)와 라이선스 (향수, 안경과 어린이의 패션 )로 나누었다. 2007년 6월 이후 Escada는 CEO가 된 Mark Loubier에 의하여 이끌어지고 있다. 에스까다스타일은 감각적인 무늬와 원색의 조화이다.아프리오리는 서브브랜드이며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향수,가방,잡화 등 이다.










http://www.jilsander.com

독일브랜드



질샌더(Heidemarie Jiline Sande,1943~,독일,여)는 독일의 작은 해안 도시에서 태어난 그녀는 함부르크의 퀸스라고 불리는 중상층의 아파트 단지에서 성장했다. 섬유공학을 공부했으며,미국으로 건너가 2년간 로스앤젤레스 에 있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에서 의상을 공부했다. 1965년 뉴욕의 여성지 《맥콜즈 McCall's》의 패션 기자로 일했고 함부르크주로 돌아와

《콘스탄제 Constanze》를 비롯하여,《페트라 Petra》 등 잡지사의 패션 편집자로 활동했다. 25세 때에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부티크를 열어 소니아 리키엘, 클로에 등 프랑스 의상을 수입해 팔았다. 당시 독일에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별로 없고 대량생산되는 기성복이 전부 였으므로 그녀는 이러한 독일 패션계를 변화시키고자 디자인에 뛰어들어 독일 상류층 여성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1968년 인디아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시스템을 시도하였으며, 1973년 질 샌더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첫 컬렉션을 시작하였다. 1997년에는 첫번째 남성복 컬렉션을 런칭하며, 단순하고 엄격한 디자인으로 남성복 시장을 석권하였다. 질샌더스타일은 단정하고 절제된 조형미가 느껴지는 미니멀리즘과 순수함을 추구한다. 그녀는 지나치게 예술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사업성에 무게를 두는 현실 감각이 있는 디자이너이며 특히 모노톤의 심플한 라인의 슈트로 유명하여, 아르마니와 함께 슈트의 거장으로 불린다. 또한 섬유공학을 공부 한 그녀는 신소재의 개발에 뛰어나매 컬렉션마다 신소재를 발표하는 디자이너이다.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보석,향수 등이다.










http://www.hugoboss.com

독일브랜드



휴고보스(Hugo Ferdinand Boss,1885~1948,독일,남)는 독일에서 1923년에 휴고보스사를 설립했다. 초기에는 나치스의 제복과 군복, 관리들의 유니폼, 작업복을 주로 만들었다. 1948년 창립자인 보스의 죽음 이후 회사는 내리 막길을 걷게 되나 1953년에 남성복 정장을 선보이면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1967년에 유에 홀리와 조엔 홀리가 회사를 물려받으면서 본격적으로 기성복 시장에 뛰어들었다.1973년부터는 고품질의 캐시미어와 울 등의 최고급 원단을 사용함으로써 브랜드의 품격을 한층 높였다. 1981년부터 셔츠를 선두로 넥타이, 스웨터, 가죽재킷 등의 의류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1984년에 남성 향수 '보스 No.1'이 출시된 이후로 향수가 회사의 주요 품목 이 되었다. 1993년 이후 휴고보스는 '보스 휴고보스(BOSS Hugo Boss)' , '휴고 휴고보스(HUGO Hugo Boss)', '발데사리니 휴고보스(BALDESSARINI Hugo Boss)의 세 브랜드로 나뉘었다. '보스 휴고보스'는 휴고보스의 대표 라 벨이며 20~40대를 대상으로 하는 고가의 정장 라인인 '블랙 라벨', 10~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캐주얼웨어 라인인 '오렌지 라벨', 스포츠웨어 라인인 '그린 라벨' 로 나뉜다. '발데사리니 휴고보스'는 휴고보스의 수석 디자이 너인 베르너 발데사리니의 이름을 따서 만든 브랜드이다. 최고급 원단과 수작업을 통해 만든 옷은 휴고보스 브랜드 중 가장 고급었으나 2004년에 휴고보스 로부터 분리되어 독립적인 노선을 걷다가 2006년 8월에 남성복 제 조사인 알러스(Ahlers AG)에 매각되었다. 휴고보스스타일은 화려하고 아방가르드한 디자인의 옷이 주류를 이루는데 지적이고 단정하다. 사업분야는 패션,향수, 선글라스,시계,의류 등이다.










http://www.manoloblahnik.com

스페인브랜드



마놀로블라닉(1942~,스페인,남)는 하이힐의 대명사로 불린다.슈즈 디자이너.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법을 공부하다가 방향을 전환,파리에서 아트를 공부하게 되고 1969년 런던 패션 부티크에서 일하면서 <보그워모>의 아트일을 하게된다.1971년 뉴욕에서 당시 <보그> 편집장인 다이아나 브릴랜드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권유로 구두 디자인을 시작하게 된다. 1972년 오시클락의 패션쇼 슈즈 작업을 시작으로 그후 30여년동안 수많은 디 자이너들과 일해오고 있으며 현재 자신의 브랜드를 갖고 있다. 마놀로 블라닉의 구두들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이탈리아 영화와 미국의 코미디에서 영감을 얻었다.그가 영화와 연극의 무대디자인을 꿈꾸면서 일하던 시기 이기도 하다. 그의 뾰족하고 높은 굽의 구두는 아주 유명하고 섹스 앤더 시티(Sex And The City)에서도 소개되고 있으며 마돈나에게는 섹스보다도 훨씬 좋다고 극찬을 받고 있다. 이런 극찬과 폭발적인 수요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새 구두의 디자인을 직접 스케치하고, 틀을 만들며, 색상과 소재를 고르고, 굽을 깎아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구두에 열광하는 열렬한 단골층을 만들어준 그 과정 일일이 말이다. 마놀로 블라닉은 여성 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이힐 만들기를 좋아한다."나는 어떤 여성이 하이힐을 신고 있으며, 어떤 종류의 여성들이 앞으로 하이힐을 신게 될지, 그리고 그녀가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있다." 그는 자신의 구두가 어떤 것들과 함께 신겨지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는다. "오랫동안 내 구두들이 신겨지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 난 그것이 좋을 뿐이다."










http://www.loewe.com

스페인브랜드



1946년 스페인에 가죽 공방을 열고 가죽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이후 로에베(1872~사망,스페인,남)의 우수한 제품력은 스페인의 문화와 결합하여 럭셔리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로에베는 스페인의 섬세한 수공예 기술을 바 탕으로 최고의 피혁 제품을 만들어 왔다는 점과 스페인의 유명화가나 건축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거나 이를 응용했다는 점에서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된다. 로에베스타일은 정열적이고 즉흥적인 분위기를 가미한 수공예분야의 전통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해내는 감각에 있다. 가죽제품은 특히 유명하다. 사업분야는 패션과 향수분야이다.












http://www.balenciaga.com

스페인브랜드



발렌시아가(1895~1972,스페인,남) 디자인의 특징은 옷을 입었을 때 그 여성은 완벽하게 재단된 패브릭의 차가운 확산과 피부의 따뜻한 생기 사이에서 생기는 매혹적인 분열감을 느낀다. 발렌시아가는 인체의 특별한 부분에 '구조 만들기(Irame)'를 결정했는데, 그것은 성적으로 자극하는 부분을 새롭게 창조하였다. 발렌시아가는 목이 훤히 드러나는 디자인을 하였으며, 화려한 목걸이를 하기 위한 장소로 남겨 두었다. 그의 디자인 특징 중의 하 나인 3/4길이 소매는 여성의 손목과 손짓을 새로운 포인트로 만들었다. 한국의 금강제화에서 라이센스브랜드로 도입하여 판매하고 있다. 즉 100% 국내산 제품이다. 발렌시아가의 디자인은 수수하며 몸에 꼭 들어 맞지 않고 풍성하게 디자인 된 옷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주로 입혀 졌다. 편안함 때문에 항상 완벽하지 못한 체격 조건을 가진 여성들 또한 선호하게 되어 주로 미국의 제조업자들이 좋아했다. 사업분야는 패션,슈즈,가방,선글래스등이 다. 슈즈는 글래디에이터 형태의 슈즈가 많다.




















http://www.frankiemorello.it

네덜란드브랜드



프랭키모렐로(1972~,네덜란드,남)는 Maurizio Modica and Pierfrancesco Gigliotti에 의해 1998년에 런칭되었다. 모렐로스타일은 어깨쪽 패치와 전면부의 프랭키똑딱이단추로 대변된다. 전체적인 컬러는 오렌지로 대변된다. 모렐로스타일은 미국적인 활동성을 가지면서 남미의 정열을 합친 것 같은 펑키스트리트 룩이다. 분야는 패션,슈즈,안경등이다.








http://www.oilily-world.com

네덜란드브랜드



오일릴리는 1963년에 창립된 네덜란드 브랜드다. 마리에케ㆍ오스토른 부부가 그들의 쌍둥이 자녀를 위해 옷을 만들기 시작한 데서 비롯된다. 오일릴리스타일은 체크, 블록, 스트라이프 등이 꽃과 같은 강한 장식적이고 아기자기한 문양, 재미있게 변형된 동물 캐릭터나 독특한 문자 배열의 이미지 프린트가 주를 이룬다. 처음엔 아동복 위주였으나 이어 여성의류, 골프의류로 영역을 확대했다. 뿐만 아니라 가방, 신발, 모자, 머플러에서부터 시계, 양말, 팔찌, 목걸이, 머리핀, 헤어밴드, 우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액세서리를 구비해 토털 코디네이션 판매를 유도하고 있다.










http://www.dsquared2.com

캐나다브랜드



디스퀘어드2란 패션계의 악동 케이튼(딘 케이튼, 댄 케이튼) 쌍둥이 형제의 캐나다브랜드로 상당히 고가의 의류 및 악세사리를 판매하고 있다. 쌍둥이인 딘과 단 형제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닮은 감성과 꿈을 가지고 있었 다고 한다. 바로 디자인, 패션, 창의력에 관한 것인데, 이것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뉴욕의 파슨스 패션 스쿨에 입학했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2년 정도로 짧은 공부에 만족해야 했고, 이후 본국인 캐나 다에서 한 의류 업체에 함께 취업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디자인에서부터 프로모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을 했고, 그 6년의 기간은 그들의 밑거름이 된다. 'Dsquared2'는 1993년 처음으로 브랜드를 런칭한 이후 1994년 밀란에서 남성 컬렉션으로 런웨이 데뷔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2003년 2월 여성복 라인을 선보였다.사업영역은 패션,향수,안경이다.디스퀘어스타일은 도시풍이다.










http://www.swarovski.com

오스트리아브랜드



1895년 오스트리아의 스와로브스키(D. Swarovski, 1862∼1956)가 티롤주의 와튼즈에 세운 크리스털 제조 및 판매회사이다. 작은 장식품부터 패션제품에 이르기까지 10만 개 이상의 제품을 생산하여 세계 크리스털업계를 선 도하는 기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창의성과 다양성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대를 앞서는 뛰어난 경영으로도 유명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연마기계를 개발하였고, 1970년대 석유 파동 이후 세계경제가 침체에 빠졌을 땐 크리스털 조각들을 감쪽같이 붙일 수 있는 투명한 접착제를 발명하여 크리스털업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1976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제12회 동계올림픽때 크리스털 마우스를 기념품으로 제작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새로운 도약을 하였다. 이 기념품은 식기와 고급 장식품에만 사용되던 크리스털을 다양한 분야에 응용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후에도 다양한 동물 기념품을 제작하였고, 실버크리스털 라인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였다.사업분야는 크게 실버크리스털, 크리스털 메모리, 셀렉션, 그리고 보석·시계 등을 포함한 패션으로 구분된다. 이 라인에서 생산된 130여 개의 제 품이 세계 각지에서 판매되고 있다.
















http://www.akris.ch

스위스브랜드



Akris는 스위스에 본사를 두고 80여년동안 3대에 걸쳐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의류명품 가계기업이다. 1922년 작은 재봉틀로 앞치마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아크리스의 시작이였다. 아크리스의 Akris는 그녀의 이름 알리스 크 리믈러- 쇼흐 Arice Kriemler- Schoch에서 따온 것이다.그녀는 현재의 아크리스를 위한 기초를 닦아놓았으며, 그녀를 발판으로 1945년 아들 막스크리믈러가 쿠튀르 의상을 제작하며, 아크리스는 쿠튀르 회사의 입지를 다졌 다. 막스 크리믈러의 아내 우데는 아크리스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자리 잡는데 든든한. 조련자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Akris는 파리에 문을 열고 세계적인 발달을 위한 기초를 창조하는 국제적인 프레타포르테 의 명성을 쌓아 올린다. Akris 회사 로고는1985년 만들어졌으며, 1996년에 이름 Akris punto를 가진 디자이너 스포츠웨어 제작이 시작된다. 회사는 그것을 두번째 상표, 독립적인 디자인으로 창조했고 Akris punto는 Akris의 역사 정신 및 철학을 더 넓혀 Akris의 고객 확보와 완벽한 스타일 확립을 하게된다. 아크리스 스타일은 안정, 여성적, 단순하면서도 차분한 단색대비로 은근한 엘레강스를추구한다.










http://www.kenzo.com

일본계 프랑스 브랜드



다카다 겐조(高田賢三, akada Kenzo,1939~,일본,남)는 일본의 패션 디자이너로 프랑스에서 활동한다. 그의 디자인 특색은 유럽,아프리카,중국 등 이국적 문화를 표현한 것이다. 다채로운 색과 정교한 무늬를 클래식한 룩에 적용하는 파격적인 디자인 등 겐조의 모드는 즐거운 유머와 젊음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전 계절의 여름화를 선언하고 대담한 색상의 꽃무늬를 모티프로 사용하였다. 스타일은 신선한 색채, 화려한 프린트, 자유롭고 편안한 레이어링으로 사랑받고 있다. 겐조의 작품은 고전적이며 독창력이 풍부한 안티모드적인 경향이 짙다. 특히 다양한 꽃무늬의 모티브와 원색에 따른 여러 색의 배색, 동양풍의 무명천을 사용하여 세계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했 다. 패션용어 사전에 기모노 슬리브라는 용어를 수록하게 한 디자이너로서 ‘가장 프랑스적인 일본 디자이너’ 또는 ‘가장 일본스러운 파리 디자이너’로 불린다.또한 겐조로 인하여 네오쿠튀르(Neo-couture:새로운 모드의 창조자)라는 말이 생겨났다.1980년대 샤넬점의 칼 라거펠트와 함께 ‘두 사람의 K’로 불린다.사업영역은 패션,액세서리,화장품이다.특히 겐조향수는 유명하다. 최근에는 원숙한 색으로 전환하는 것 같다. 아래 사진은 2009 년과 2007년 사진 대비이다.
















http://www.annasui.co.jp

일본브랜드



미국 디트로이트 출생인 일본계 여인 안나수이(1955~,일본,여)는 뉴욕 파슨스 스쿨졸업생이다.뉴욕의 모던한 패션스타일에서 로맨티시즘이라는 또 하나의 패션트렌드를 창출해냈다. 그녀의 디자인 경향은 대중문화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한다. 1950년대의 카프리 팬츠와 힙 허깅 팬츠, 짧은 스커트나 주름 장식을 넣은 쇼트 팬츠와 같은 코코 샤넬 스타일 등이 그녀를 통해 새롭게 재현된 아이템이다. 안나수이스타일은 화려한 프린트에 소녀적인 히피룩이다. 한편으론 보헤미안적 집시스타일. 사업분야는 패션,구두,향수 등이다.
















http://www.yohjiyamamoto.co.jp

일본브랜드



요지야마모토(1943~,일본,남)는 일본 디자이너이다. 150미터 정도 되는 크지 않은 키에 그의 부드러운 외모와는 달리 요지 야마모트는 모험을 즐기며, 줄담배를 피우고, 가라데를 즐기고, 위스키를 즐기며 기타를 연주하는 기인이다. 그는 패션계의 최고의 반역자 라고 할 수 있다. 요지야마모토스타일은 검은 색을 사용하여 클래식하며 철학적인 멋을 풍긴다. 일본인으로서 서양 의복 양식에 일본 토착의 미학을 접목시켰다고도 한다.1983년 (아 디다스를 위해 야마모토가 디자인한 라인)와의 결합을 시도했다. 그의 옷들은 독립적이며 스타일이나 트렌드, 패션의 변덕과 무관하게 철학을 지니고 있다.전위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 서 로맨티시즘의 황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독특한 미학을 선보이고 있다. 사업분야는 침대,의류,가구,신발,액세서리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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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품으로 커가고 있는 패션브랜드이다. 1988년에 런칭하였다. 마인스타일은 트랜디한 클래식이다. 사업분야는 패션,액세서리,시계등이다.






연륜이 더하는 만큼 갈증도 더해진다. 사람마다 나름의 갈증이 있겠지만 본인의 경우는 인생에 대한 갈증이다. 내세가 있든 없든 현재 주어진 인생에 충실하고자 하는 욕망은 철학과 종교 언저리를 끊임없이 기웃거려도 숙 제는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숙제는 좀 더 연륜이 더해진 다음 다른 재미를 볼 수 없는 육체적 한계에 도달했을 때 좀 더 진지하게 풀어보려고 접어두고. 우선은 생활철학을 긍정적으로 치열하게 가지도록 내 자신에게 명 했다. 너 주위의 모든 것을 사랑하라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사랑은 또 어디에서 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며칠을 고민 끝에 사랑은 내 주위의 모든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생각하는데서 온다는 깨달음을 얻게되었다. 불교에서 애기하는 연기론에 빠진 셈이다. 날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한국사회에서는 받는만큼 준다는 생각이나 내가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 다는 지극히 에고이즘 적인 생각은 결국 나의 마음을 황폐하 게 함을 알 게 된 것이다. 그럼 내 주위를 사랑할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2차적 화두에 빠져버렸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그냥 껴 안을려면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이해하다가 understand이 고 파자(波子)하면 남의 밑에 서 보라는 것이니 그렇게 실천하기로 했다. 그런 후에는 마음이 편해졌다. 경제고와 생활에서 오는 모든 스트레스는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이 언젠가는 사그러 질 것은 명확하다. 그런데도, 또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남을 좀 더 이해할려는 옥구는 겉 잡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급기야는 세상 모든 지식에 대한 욕구로 번져 가 버렸다. 결국은 인생은 대한 갈증이 지식에 대한 갈증으로 터져버린 것이다. ' 그래 치열하게 알아보는거야' 하고 마음을 다 잡았다. 철학을 다시 공부하고 종교의 주춧돌을 다시 세우고 멀리서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인생에 대한 사랑은 여성에 대한 사랑으로 귀착되는 거다. 본인이 여성이 아니어서 그런지 여성은 그 변덕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페미니스트가 되어버렸다. 여성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없이는 이 지식에 대한 욕구는 멈추지 않을 것 같아서 우선 여성의 감성적인 마을을 닮아가기로 했다. 그래서 칼을 뺀 김에 패션부터 알아보기로 했는데 - 사실 본인은 옷은 걸치기만 하면 된다는 실용주의였다- 어찌하다 보니 명품에 대한 이해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곳 저 곳을 뒤져 서 명품공부를 하기 시작힜는데 자꾸 욕심이 생겨 결국 이 방대한 작업을 하게 되었다. 거의 2달을 사무실에서 집에오면 이 작업에 매달렸다. 사무실에서 집에오는 시간도 9시 가까이 되어 오니 나름 고생한 셈이다. 하지만 , 마치고 나니 괜찮았던 작업 같아서 마음이 가볍다. 명품을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자그만한 힘을 보탠 것 같아서 기쁘기도 하고 말이다.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명품들은 다시 한 번 연구해 갈까 한다. 내 친 김에 명 품스토리를 다루는 블로그도 하나 더 개설하였다. 인터넷이 나쁜 영향도 많이 끼치지만 좋은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블로그는 내 생활에도 힘이 되고 있다.이 글을 읽는 블로거 모두들 명품을 만드는 디자이너를 닮아 마음을 아름답게 조각하고 편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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