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5강.가치론의 한 분야로써 인간본성론

샐각의창|2009. 4. 12. 23:54

 

인간이 실천적 자의식을 갖고 있는 주체적 존재란 말은 무엇일까 ? 가치론의 중심이라면 인간의 본성론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인간 존재는 스스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과정 속에서 부단히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기획하면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될 숙명을 안고 있다는 의미이다.

 

동양과 서양의 인간본성론을 개괄적으로 본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의 인간관은 자연과 인간을 구분하지 않고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해야 한다고 믿었다.대표적인 인간관은 동양에서는 공자 및 맹자의 유가사상이고 서양에서는 그리스사상으로 대표할 수 있다. 우주.자연.천(天)과 인간(人間)과 관계를 동양의 유가적 사상에서는 도(道)와 덕(德), 서양의 그리스 사상에서는 cosmos와 micro cosmos로 보고 천인합일(天人合一) 또는 조화(Harmonia,多의 共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존재론적으로 본다면(철학은 존재론,인식론,가치론이 전체 줄기이다)

 

고대에는 자연(自然)중심, 중세에는 신(神)중심, 근세에는 인간(人間)중심의 인간관으로 발전하여 온다. 이성을 취급힐 때도 고대희랍사상에 의하면 인간 이성은 인간의 본질인 동시에 우주의 본질로서 세계이성과 동질적인 것이다. 그러나 근세에 이르면 인간의 주체적 자아개념이 등장하고 자연과 인간, 주객의 분리가 진행됨으로써 그리스적 이성은 곧 인간 자아의 주체적 이성으로 치환된다. 근세 사상의 두 가지 주된 발전 방향은 합리주의적 인간관과 경험주의적 인간관으로 발전되었다. 합리주의란 비합리적 ·우연적인 것을 배척하고, 이성적(理性的) ·논리적 ·필연적인 것을 중시하며 이성이나 논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어 이 세상에는 존재이유(存在理由)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보는 보편적 이성을 주장하는 설로서 사상의 원천으로는 그리스로마시대의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를 거쳐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학파, 그리고 근대의 스피노자,헤겔,데카르트,칸트로 계보가 이어진다.

 

합리주의 사상의 예를 잘 보여주는 사상가로는 데카르트와 칸트를 들수있는데 데카르트는 경험.관찰을 완전 부정하면서 보편적 이성을 찾기위해 '방법적 회의(방법서설)' 라는 방법을 쓴다. 경험주의는 보편적이성을 배제하고 내가 눈으로 보고 깨달은것. 내가 실험을 통해 얻어낸 것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설이다. 경험주의의 원천으로는 그리스시대의 소피스트를 들수있는데 소피스트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 라는 명제를 내세우며 보편적인것은 없고 각 개인마다 경험 관찰하는 사실이 다르다는 전제로 상대주의 윤리설을 주장한다.그 경험주의 사상이 헬레니즘 시대의 에피쿠로스학파 근대의 베이컨, 홉스, 흄 을 거쳐 공리주의 실용주의 사상으로 계보가 이어진다. 경험주의 연장선상에 선 공리주의에 의하면 인간성이 선천적인지 아닌지, 그 것이 선한지 악한지는 알 수도 확인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가 경험적으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은 모두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멀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성의 기본은 쾌락의 추구이다.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되 다른 사람에게도 쾌락을 가져다 줄 수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이 자신에게도 좋다는 것을, 즉 그것이 나에게나 우리 모두에게 효용있는 것임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되는데 이렇게 터득한 원리가 효용의 원리이다. 공리주의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효용의 원리를 받아들이도록 되어있으므로 쾌락을 추구하더라도 결과적으로 관계자의 쾌락까지 포함하는 공중적 쾌락, 즉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목표로 삼게 된다고 본다. 공리주의는 효용성의 원리에 의해 개인의 이기적 쾌락 추구가 결국은 공중적 쾌락을 가져온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사상으로서, 이기심의 공존 가능성을 기초지은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사상인 까닭에 자본주의 자유주의적 윤리 사상 대부분은 공리주의에 기초하고 있다. 자본주의 공리주의가 나왔으면 사회주의 공산주의도 잠시 엿보자.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적 소유가 없던 원시공동체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이웃에 대해 선하고 우애적이며 협동적이었으나, 사적 소유의 발생이 그러한 인간성을 왜곡시키기 시작했다. 즉 사적소유는 인간관계를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그리고 배타적이고 경쟁적인 관계로 만든 근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마르크스는, 사적 소유제(사유재산제)가 철폐되어 모든 재화 및 생산수단을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공산사회가 수립되면, 원시공동체사회에서처럼 사람들이 상부상조하고 협동하는 본성을 갖게 되어 완전 평등이 실현된 이상사회가 정착될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프로이드의 비판처럼 사적 소유욕은 인간이 갖는 본능적이고 근원적인 공격적 성향의 일부이므로 그것을 변화시킨다 해도 그 근원적인 본능적 공격욕은 여전히 본성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 본능은 사적 소유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사적 소유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인간 내부에 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가 이상사회를 구현하는 방법론으로 여전히 유효할지 모르나 목적론으로서의 공산주의는 실패한 실험으로 보는 것이 현재까지 역사의 흐름상 귀착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도 그 속성상 인간성을 배척하는 사조로 흐르기 쉽상이어서 사회주의 장점을 연구하고 받아들여 인간이 우선인 사회를 만드는데 사회지도층들의 노력이 더욱 더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


동양적인 인간관은 어떻게 이어져 왔을까 ? 동양적 인간관은 크게 유교적 인간관,불교적 인간관,도교적 인간관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유교적 인간관은 인간의 본질을 하늘의 기품과 땅의 형상르 가장 환벽하게 부여받은 중간적 존재자로 본다. 삶의 원리로는 사욕(邪慾)또는 육욕(肉慾)이 선한 본성을 가려서 그 유혹에 넘어가는 수도 있기 때문에 수기(修己)와 수양(修養) 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상적 인간상은 고도의 수양을 쌓은 군자(君子) 또는 성인(聖人)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적 인간관에서는 인간의 본질은 본래 맑고 깨끗하나, 인생의 모습은 무지와 탐욕에 의해서 고통(苦)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삶의 원리는 고통의 원인을 깨닫고 탐욕을 버림으로써 행복을 누리며 올바는 삶을 영위할 것을 요구한다. 이상적 인간상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가르쳐 자비를 구현하는 사람 즉, 보살(菩薩)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도교적 인간관은 인간은 인위적인 부자연스러움에 의해 본래의 모습을 발휘할 수 없으며 무위(無爲)의 자연스러움 속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는 것(無爲自然)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삶의 원리는 세속적인 생활을 초월하고 대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삶이라고 믿었다. 이상적 인간상은 무위자연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 즉 지인(至人),신인(神人),천인(天人)이 최고의 인간상이었다. 동양적인 인성론이든 서양적인 인성론이든 방법과 중심이 다를 뿐 인간으로써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하는 점을 화두로 삼고 있었음은 확실하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한 것도 사실인 듯 하다. 인생은 짧다. 짧은 인생에 아무런 생각없이 하루하루 허비하고 살 지 창조적으로 사랑하며 살 지는 개개인의 몫이다.

[참고] 인간의 본성에 관한 10가지 이론 (레슬리 스티븐슨), 쇼펜하우어 인성론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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