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11강.귀납법을 중시하는 경험론, 연역법을 중시하는 합리론

샐각의창|2009. 4. 12. 23:58


과학적 판단의 방법에는 대응설(모사설)과 정합설(일관설)이 있다. 대응설(모사설)이란 판단(관념)과 사실(실재)의 일치 여부가 진리 판별의 기준이 되며 “있는 그대로,사실 그대로 말하는 것이 진리이다”라는 것으로 우리의 일상적인 생각과도 잘 부합되긴 하지만 외부의 대상과 나의 관념이 일치한다는 근거를 밝힐 수 없는 난점이 있다. 앞서의 강의에서 든 예를 살펴보자.실재 사과를(a)라고 하고 사과라고 여기는 관념을 (c) 눈으로 비추어지는 사과의 모습을 (b)라고 나누어 생각해보자. 내가 앞에 있는 사과를 사과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은 (a)=(c)가 아니고 (b)=(c)이다. 즉,실재사과(a)를 사과라고 여기는(c)는 것은 실제로는 눈으로 비추어지는 사과의 형상(b)을 사과라고 여기는 것이다. 눈에 들어온 관념(b)를 또다른 관념(c)라고 여기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에 반해 정합설은 관념과 관념의 무모순성 여부를 따지며  보편적 진리의 확고한 근거와 기준을 제공하고 대응설에 비해 수학적 기하학적 명제들의 진위를 적절하게 판가름해주어 학문의 체계성을 확립하는데 기초가 된다.하지만 어떤 판단의 진리성을 체계 내 상위판단과의 정합 여부 즉 상위판단을 전제로 하고 곳에서 새 판단이 논리적으로 연역되느냐 않느냐로 판정하는데 과연 그 체계의 최초전제인 상위판단은 무엇으로 진리성을 보장받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즉, 정합설은 과학적 지식의 진리성을 형식적 논리적 측면에서만 보증해주고, 사실적 내용적인 측면에서 그 진리성을 보증해 주지는 못한다. 다시 말하면 과학적 지식이기 위한 필요조건은 갖추지만 충분한 조건을 갖추지는 못한다. 그럼, 도대체 충분조건은 어떻게 갖추어 가야 할까 ? 경험과학적 지식체계의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해주는 것은 대응설 중 감각적 모사설에서 중시하는 감각적 경험이며 귀납적방법이 보완재로 작용한다. 기하학적 지식 체계에서 최상위 판단들 즉 공리들의 진리성은 이성적 모사설에서 연역적으로 뒷받침해 준다.


감각적 경험에서의 귀납범을 살펴볼까? 귀납법은 부분적인 사례들에 대한 관찰에 기초해서 모든 사례에 대한 일반지를 도출하는 일반화의 방법 인데 귀납의 과정에는 모든 것을 다 관찰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에 논리적 비약이 따르게 되어 일반지가 참일 수 밨에 없는 필연성을 보증해 주지는 못한다. 그럼 어떻게 필연성을 확보해 나가야 할까 ? 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 중 하나가 근대의 철학은 크게 영국 경험론과 대륙 합리론의 두가지로 나뉘어 짐을 배우게 되고 경험론은 대응설과 합리론은 정합설과 연관되어 있음을 공부하게 된다. 도식은 경험론-대응설-귀납법, 합리론-정합설-연역법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 위의 도식대로 본다면 경험론이 귀납법을 채책함으로 발생되는 논리의 비약을 고민할 수 밖에 없었을 테고 귀납적 비약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노력한다. 귀납적 비약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경험론자 존 스튜어트 밀이 내 세운 것이 바로 자연제일성(自然齊一性,The uniformity of nature)이라는 법칙인데 자연은 동일한 조건 아래에서는 동일한 현상을 발생시키는 통일적 질서를 지니고 있다는 원리이다. 이것은 공간적인 공존의 제일성과 시간적인 계기(繼起)의 제일성으로 나뉜다. 그는 관념의 관계와 사실의 관계를 엄격하게 구별하고 산술이나 대수와 같이 관념 상호 간의 관계만을 따지는 연역적 논증적 지식에 대해서는 그 확실성을 인정하되 단순한 관념만의 영역을 넘어선 사실에 관한 지식에 대해서는 절대적 확실성 대신에 개연성만을 인정했던 것이다. 이는 후자가 전자와는 달리 어디까지나 인상, 즉 경험에 대응하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대부분은 이와 같은 개연적 지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러한 지식을 가지게 되는 것인가?스코틀랜드 철학자 흄에 의하면 그것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심적 기능의 하나인 상상(imagination)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지식이다.흄은 모든 지식은 본질적으로 무지식(non-knowledge)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완전한 자연적 철학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들의 무지를 약간 더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가장 완전한 정신적인 또는 형이상학적인 철학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가 그 분야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게 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이다. 이리하여 인간의 맹목과 위약함을 관찰하는 것이 모든 철학의 결과인 것이다." 흄은 지식이 아니라 신념과 습관을 실천활동의 기초로 할 것을 권장했다. 여하간 경험론은 지식의 기원이 경험에 있음은 밝혔지만 지식의 원천으로서 경험만을 고수한 까닭에 자연의 제일성이라는 법칙을 들고 오긴 했으나 지식의 일반지로서의 성격 즉 지식의 보편성을 완벽히 설명하는 데 실패했다. 지식의 보편성을 설명하기 위해 대륙함리론에서는 데카르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데카르트는 가장 확실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리를 찾으려 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진리가 아닌 것들을 소거하는 것인데, 그 방법은 저서 《방법서설》에 잘 나타나 있다. 데카르트는 확실한 진리를 찾으려 불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감각도 배제 했는데, 이는 감각도 반드시 맞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 세상에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존재는 내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주관이니 객관이니 하는 관념도 데카르트로 부터 출발된 것이다.


내가 생각함으로써 객관화 된 세상이 펼쳐진다면 나의 육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 데카르트는 여기서 심신이원론을 주장한다. 심신이원론은 나중에 스피노자와 칸트에 의하여 비판되지만 그가 절대확실한 존재로서 신 대신 인간을 철학의 중심에 세운 것은 철학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알다시피 17~18세기 철학은 인식론으로 크게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로 나누어졌다. 여기서 합리주의는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선험적 이성을 중시하였고, 경험주의는 인간은 경험함으로서 얻는 귀납법을 중시하였다. 합리주의의 방식은 지식을 확장해 나가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 경험주의의 방식은 귀납적인 방법을 강조한 나머지 진리의 필연성을 찾는데 한계를 드러내었다


칸트는 이 두 사상을 통합한 선험주의(a priori)를 주장하는데, 이는 칸트 철학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인간의 사고는 비록 경험을 완전히 초월할 수는 없지만 경험을 토대로 하면서 경험보다 앞서 존재하는 인간사고의 기본구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따라서 자연사물의 인과성과 보편타당성은 우리가 경험라기 이전부터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다.칸트의 인식론에 땨르면 물자체(Thing it-self)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갖고있는 인식능력(a priori)이 있다고 한다.또한 인식능력은 두 종류로 나누었는데 하나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직관이고 또 하나는 오성(understanding)이다. 칸트에 따르면 직관을 통하여 감성영역의 질료들(물자체)을 인식하고 오성을 통하여 개념을 형성한다.또한 초경험적인 것은 이성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칸트는 뉴튼 물리학 등의 당시의 자연과학적 진리가 경험적 객관성과 논리적 필연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는 것을 굳게 믿고 이미 실질적 진리로서 현존하는 그와 같은 자연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보편타당성을 갖는지를 인식론적으로 밝히고자 하였다. 물자체는 인간의 인식능력에 의해 '변형', 혹은 '가공'되는 것이다.칸트는 인과의 개념이 인간의 오성에 내재한 것으로 물자체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점은 칸트의 비판철학의 한계점을 드러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칸트는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 선천적 인식능력 뿐만이 아니라, '물자체'까지도 가정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물자체에 인과의 개념이 적용된 것이다. 물자체가 인식능력에 의해 변형 또는 가공되는 것이라면 어떻게 경험의 원인으로써 물자체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있겠는가 ?  칸트 한계를 극복하고자 나타난 사상이 '독일관념론'이고, 헤겔에 이르러 절대적 관념론으로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식가능하며, 실제로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이 존재하는 모든 것 이라고 주장한다. 헤겔은 다음에 다시 살펴보도록 하자.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