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테러에 떠올린 변질된 종교와 비극적 사랑, 사라예보의 로미오와 줄리엣

샐각의창|2015. 12. 25. 09:25




프랑스 다발적 테러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2015년 11월 13릴 프랑스 파리 연쇄테러는 아마도 슬픈 기억으로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될 것 이다. 바, 콘서트홀, 축구장 등 6곳에 대한 연쇄테러로 이 글을 쓰는 지금은 129명의 사망자에 350여명이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짐작컨대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어 보인다. 이번 테러는 이슬람국가(IS)의 소행으로 결론이 났다. 프랑스의 테러를 안타깝게 바라보며 문득 로미오와 쥴리엣을 떠올렸다. 소설 속 로미오와 줄리엣의 기억을 타고흘러 라이온스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사라예보의 로미오와 쥴리엣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공통적인 요소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변질된 종교의 광기이다. 사랑과 관용으로 사람들을 감싸안아야 할 종교가 오히려 사람들을 극심한 대립과 중오를 심어주는 광기어린 변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





가만히 사라예보의 첼리스트를 떠올린다. 보스니아 전쟁 당시 포위된 도시 사라예보에서 첼로를 켜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던 그 사람에게서 사라예보는 잠시나마 감동을 맛보던 시간이 있었다. 이데올로기의 동토인 소련과 동구유럽에서 자유의 자람이 불어오고 구 유고슬라비아가 몇 개의 나라루 분리되던 시기 그동안 유고연방의 중추적 역활을 하던 세르비아가 반발해 내전을 일으킨다.





유고연방은 1981년에서 1992년 사이에 거의 분리 독립된다. 그리고 연방의 해체로 인한 분란도 발생하게 된다. 유고연방이 해체될 시점인 1991년에서 1999년까지 여러차례 일어난 전쟁을 우리는 편리상 유고슬라비아전쟁이라고 부른다. 그 가운데 보스니아전쟁은 가장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1992년 4월 5일부터 1996년 2월 29일까지 1,425일 동안 벌여진 보스니아 사라예보 포위전은 전쟁의 파괴성과 더불어 그 속에서도 살아 움직이는 평화에 대한 갈망과 사랑도 있었다. 평화에 대한 강렬한 외침 중 하나의 일화를 우리는 한 첼리스트의 연주였다. 사라예보의 첼리스트(The Cellist of Sarajevo)이란 제목으로 나중에 책으로도 발간된 이 일화는 사람들에게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당시 세르비아 민병대에 의하여 둘러싸인 사라예보는 물과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처절한 사투가 벌어진다. 그들에게 하루는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로 귀결되는 날들의 연속선 이었다. 1992년 5월 27일 총과 포탄 사이를 숨어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던 사람들에게 한 가게에서 빵을 만들어 판다는 소식이 들린다. 사람들은 빵을 사기위해 그 가게에 줄을 섰다. 그 때 어디에선가 날아온 포탄이 사람들 사이에서 터지고 22명의 목수을 앗아가고 100여명의 부상자를 만들어 내었다. 순식간에 거리는 사람들의 비명과 시체 그리고 피로 얼룩진 지옥의 한 모습이 되고 만다. 그리도 그 다움날 빵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나섰다가 죽은 사람들이 있던 그 장소에 한 첼리스트가 나타난다. 그는 연주용 의자를 내려놓고 그 위에 앉아 체로를 켜기 시작한다. 그의 첼로에서 흘러나온 곡은 아다지오G단조(Adagio in G minor), 사람들이 슬픔에 빠질 때 많이 듣는 음악이었다. 순간 주위는 정적이 찾아오고 그 광경을 숨어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사냥감을 찾던 저격수들고 일제히 그의 언주를 듣기 시작한다. 잠시나마 총성을 멈추었고 다만 그의 선율만이 전쟁의 광기속에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울러퍼졌다. 그의 이름은 베드란 스마일로비치(Vedran Smailovic)라는 였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사라예보의 필하모닉에 소속되어 있었다. 그는 5월 27일의 사건을 보면서 전쟁의 비극과 평화의 갈망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고뇌에 시달리다 22일 동안 첼로연주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한가닥 희망을 주어야 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덕분에 그가 연주하는 그 시간만은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왔고 사람들은 숨어서 그의 엱두를 들으며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고 평화를 갈망했다고 한다. 그는 그 일을 계기로 1993년 북아일랜드로 옮겨갈 때까지 수많은 곳을 찾아다니며 음악으로 희망을 전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첼리스트의 염원과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희망에도 불구하고 사라예보의 비극은 계속되었다. 1993년 5월 19일 사라예보의 중심에 위치한 브르반자다리(Vrbanja bridge)에 남녀가 서로를 보며 깔갈거리고 있었다. 여자는 무슬림이 즐겨입는 검은색 옷차림에 가방을 메고 있었는데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가방을 흔들고 있었다. 그 둘은 서로의 손을 꼭 잠은채 달려나가고 있었는데 여자는 마치 춤을 추듯이 나폴거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공기를 가르는 저격용 라이플의 총성이 들리고 남자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이어 또 한번의 총성에 여자도 쓰러진다. 남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여자는 10여분간 숨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힘겹제 남자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의 곁으로 힘겹게 다가가더니 그의 어깨에 팔을 올려 무언가를 중얼거리더니 이내 사망하고 만다.





비극적으로 끝난 연인들의 운명의 주인공은 남자는 당시 24세이던 보스코브르기치(Bosko Brkic)였고 여자는 25세이던 어드미라 이스미치(Admira Ismic)였다. 이 둘을 후에 사라예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서로의 집안이 원수지간이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종교가 서로 틀렸기 때문이었다. 같이 보스니아에 살고 있었지만 남자는 세르비아 기독교정교의 집안, 여자는 보스니아 무슬림 집안 이었다. 종교적인 면으로 보면 흔히 말하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일 수도 있었다. 둘은 1984년 사라예보 동계올림픽이 열리던 그 해 신년파티에서 달콤한 첫 키스를 나누었던 둘은 사망하는 1993년까지 사랑을 키워갔다.





사라예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사라예보 옥쇄가 이루어지자 밖으로 탈출을 감행하고 있었다. 그들이 자격수의 총에 맞던 날 탈출계획을 실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종교의 차이도 뛰어넘은 그들의 사랑은 비인도적인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사라져 갔다. 사라예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시체는 4일 간이나 버려져 있었다. 저격사건 이후 사라예보를 포위한 세르비아 측에서도 수성을 하던 보스니아 측에서도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기에 바빳다. 결국 세르비아 측에서 무슴림 수감자들을 보내 그들의 시신을 거두어 하루동안의 휴전 기간 중 그들을 같이 묻어주었지만 사라예보 포위 기간 중 일어난 수많은 사상자는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만행이었다. 그들을 기리는 일은 여러 방법으로 행해지고 있지만 그들을 위로하는 노래는 가슴을 아프게 한다. 노래 중 하나를 올려드린다.



바치는 노래 Bosko and Admira by Bill Madden [노래 감상하기]





그리고 그 보스니아 내전의 이면에는 종교라는 이름이라는 합리화가 자리하고 있었다. 보스니아 내에서 기독교 세르비아계가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무슬립 보스니아계를 몰아내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예기이다. 내전이 시작된 것은 1992년 3월 1일 세르비아인의 결혼식에서 괴함의 습격을 받아 신랑의 아버지가 숨진데에서 출발하였다. 그 괴한이 무슬림이라는 소문이 들면서 소문의 진위와 관련없이 폭발력을 가지고 시작되었다. 전체주의가 민족과 종교라는 배경을 이용할 때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자 또 그 잔인람을 민족과 종교라는 이류로 정당화 시킬 수 있는지를 잘 알려준다.





전체주의적 민족관과 종교관은 늘 경계하여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도 일본 군국주의도 다 그러한 전체주의적 집단 광기에서 활기를 칠 수 있었다. 사라예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쓰러진 그 자리는 이제 젊은 연인들의 사랑의 확인하는 역사적인 장소가 되어있다. 연인들은 1993년에 사라예보의 연인이 쓰러져간 그 장소에서 똑같은 자세로 누워 퍼포먼스를 벌인다. 그들은 사랑을 확인도 하지만 다시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멀리하겠다는 명상을 할지도 모른다.





종교는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단결하게 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종교의 싸움은 악마의 수확이다.』이라는 격언에 동의하는 편이다. 종교로 인하여 단결케 하는 힘은 사랑과 관용, 자비라는 단어에 집중될 때만 그 의미가 있다. 종교라는 이유하에 남을 죽이는 행위는 어떠한 종교의 교리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내가 아닌 당신이 어떠한 종교와 생각을 갖더라도 존중할 수는 있지만 당신의 그러한 자유에 박해를 받지않는 한 타인의 종교와 생각을 재단할려고 해서도 안된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테러는 종교의 관용을 곡해한 광신자들의 씻을 수 없는 죄이다. 애초에 모든 종교의 창시자들이 설파한 말씀들은 맹목적 광신을 허용치 않았다고 믿고싶다.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연인들의 죽음처런 사랑이란 고귀한 가치가 종교적 증오로 비극을 맞는 것은 종교를 잘못 이해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시대의 광시곡일 따름이다. 사라예보의 다리를 보면서 걷는 길은 그토록 아름답다고 한다. 가슴에 증오보다 사랑을 더욱 심어야 할 시대를 살고있다. 즉을 때 까지 가치있는 단어를 품으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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